[창간특집] 신치용 감독 “코트에선 사위 아닌 선수…크게 혼내놓고 나도 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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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23일 07시 00분


삼성화재 박철우(앞)에게 신치용 감독은 두 모습으로 비춰진다. 선수단 내에서는 철두철미하고 카리스마 있는 감독이지만 집에서는 
편하고 재미있는 장인이다. 신 감독이 사위 박철우 등에 업힌 채 환하게 웃고 있다. 용인|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seven
삼성화재 박철우(앞)에게 신치용 감독은 두 모습으로 비춰진다. 선수단 내에서는 철두철미하고 카리스마 있는 감독이지만 집에서는 편하고 재미있는 장인이다. 신 감독이 사위 박철우 등에 업힌 채 환하게 웃고 있다. 용인|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seven
■ 프로배구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박철우…장인-사위 그들이 사는 법

사위 때문에 비자금 딱걸린 장인 신치용

너무 착한 사위 박철우…선수로는 근성 부족
호칭은 감독…팀서 집얘기·집선 팀얘기 금지
서로를 위해 결혼 허락하던날 3가지 원칙 제시
FA 영입땐 성적 안나면 팀떠나려 마음먹기도

장인을 장인이라 못 부르는 사위 박철우

특별대우 없는게 더 편해…출퇴근도 따로따로
아내 신혜인과 천생연분…부부싸움 한적 없어
집에서도 혼나냐구요? 술잔 나누는 편한 사이
챔프전 3차전, 통합우승컵+손주 선물 드릴 것

딸을 둔 아버지가 복잡한 심정이 되는 날이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과 결혼하겠다고 인사하러 올 때다. 게다가 그 남자는 상대팀 선수. 2년 전 봄이었다.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의 둘째 딸 신혜인과의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박철우가 집을 찾았다.

○상대팀 선수가 우리 집을 찾았다

“전부터 사귄다는 얘기는 들었다.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딸에게 잘 생각해서 결정하라고 했다. 남의 팀 선수라 오해받을까봐 조심스러웠다. 큰 딸과 아내가 ‘두 사람은 이제 못 헤어지니 결혼을 승낙해주라’고 했다. 아내와 큰 딸이 철우를 잘 봤다.” (신치용 감독)

“누구의 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저것 재다보면 좋아하는 사람을 놓치겠다 싶었다. 아내보다 감독님을 먼저 생각했다면 못 만났을 것이다. 양주를 한 병 사들고 집을 찾았다. 사귄지도 오래되고 해서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했다.”(박철우)

장인 신치용은 어떤 마음으로 배구선수 사위를 받아들였을까? 신 감독은 “애는 순진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물론 오해도 많이 받았다. ‘FA로 데려오기 위해 딸과 사귀라고 했다’ ‘현대의 작전을 빼내는 스파이다’ 등 어른스럽지 못한 소리도 많이 들었다, 그렇지만 신 감독은 무시했다. 떳떳했기에 자신 있었다. 여름에 양가 상견례를 했다.

장인의 시선 변화가 궁금했다. 상대팀 선수였을 때, 딸의 결혼상대가 된 뒤, 삼성화재 선수가 된 뒤, 박철우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현대에 있을 때는 ‘쟤 공격 잘한다’는 인상이었다. 막상 우리 팀에 오니까 결점이 많이 보였다. 기본기도 떨어지고 야무진 선수도 아니었다. 배구선수로 타고난 몸도 아니었다. 태릉선수촌에서 처음 만났을 때 선수 같지 않고 착하다는 인상이었다. 사위로서야 집에서 유순하고 착하면 좋겠지만 선수로서는 근성이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더욱 호통을 치고 다그쳤다.”

○장인과 사위의 3대 원칙

결혼을 허락하던 날, 장인은 사위에게 3가지 원칙을 말했다. “첫째 내가 배구를 그만 두거나 네가 배구를 그만둘 때까지 호칭은 감독님이다. 사위지만 박 서방이라고 안한다. 둘째 팀에서 집안 얘기를 하지 말라. 셋째 집에서 팀 얘기도 하지 말라. 두 사람의 원칙이다. 이것을 어기면 서로 불편해질 것이다.” 사위는 그 말의 뜻을, 무거움을 잘 알았다.

2009년 삼성화재는 박철우를 FA로 영입했다. 최초로 FA를 통해 영입한 선수였다. 신 감독은 “내가 나설 상황은 아니었다. 구단 고위층에서 ‘무조건 데려오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런 결정이 나온 이유가 있었다. 우리는 10년째 드래프트 최하위였다. 선수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배경도 있었다. 6년 전 삼성화재는 박철우를 영입할 뻔 했다. 경북사대부고 졸업반 때 스카우트 제의를 했다. 박철우도 원했다. 얘기가 잘 돼가던 도중 결론이 달라졌다. 당시 삼성화재는 김세진과 장병철이라는 빼어난 라이트가 있었다. ‘또 삼성화재가 선수를 싹쓸이 해간다’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박철우는 현대캐피탈로 갔다.

그런 인연이 있기에 이번에는 반드시 영입하고 싶었다. “나로서도 모험이었다. 그동안 내가 선수들과 지켜왔던 원칙이 흔들릴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다. FA 협상 때 난 전혀 나서지 않았다. 사무국장이 조건 등 모든 것을 진행했다. 만일 철우가 와서 성적이 나지 않으면 내가 팀을 떠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지금까지 박철우 영입은 성공이었다. 3년 계약기간 동안 삼성화재는 챔피언결정전에 빠지지 않았다. 24일부터 벌어지는 챔피언결정전에서 6시즌 연속 우승을 노린다.

○한 팀에 장인과 사위가 같이 있으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두 사람 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감독의 권위는 선수의 기용과 상벌의 공정성 등에서 나온다. 편애는 팀을 망가뜨린다. 결론은 두 사람이 아니라 다른 선수들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 들이냐다. “원칙대로 했다. 사위가 아니라 모든 선수 가운데 한 명으로 봤다. 어떤 때는 철우를 크게 혼내놓고 나 자신도 깜짝 놀란다. 동료들이 박철우를 불쌍하게 본다는 얘기도 들었다. 훈련 때 그렇게 혼나는데 집에 가서도 또 혼나지 않느냐며 걱정한다는 얘기였다. 선수 누구도 박철우를 내 사위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사위도 잘 따랐다. “특별히 배려를 안 해주시는 것이 더 편했다. 잘 대해주면 더 불편했다.”

장인 사위가 같은 팀에 있으면 서로에게 불편한 점도 많다. 1년 내내 얼굴을 마주봐야 하고 행동반경도 비슷하다. 만나는 사람이 누구인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독은 훈련 뒤 귀가할 때도 사위와 따로 간다. 지금 딸은 만삭으로 친정에 있다. 쉬는 날 사위와 함께 있어야 한다. 여러모로 부담스럽겠지만 두 사람은 집에서만큼은 편한 장인 사위로 잘 지낸다.

“집에서 배구 얘기를 하지 않는다. 아내와 딸도 배구 얘기를 하면 싫어한다. 가끔 철우와 술도 한다. 인생을 오래 살아온 사람으로서 미래에 대한 얘기, 배구를 그만둔 뒤 어떻게 나머지 인생을 살아가야할 것인가를 얘기해준다.”

○사위가 본 장인 그리고 감독님

사위도 집에서만큼은 코트에서와는 다른 편한 장인의 모습이 익숙해졌다. 동료들이 평소 상상하지 못할 모습도 본다. 집에서는 감독님과 180도 다른 장인의 순수한 얼굴을 볼 수 있다. 박철우에게 신 감독은 두 가지 모습이다. 선수로서는 철두철미하고 빈틈이 없고 매사에 준비를 잘하고 사람들이 따르게 만드는 감독이다. 사위로서 장인은 편하고 재미있는 분이다. 물론 딸과 사위 관계가 항상 좋을 수는 없는 법. 집에서 부부싸움을 할 때도 있다. 이런저런 의견이 다를 때도 있다. 감독이자 장인은 그때 어떻게 대처할까?

“두 사람의 집안일은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지도 못한다. 딸도 운동을 했기에 그것을 잘 알고 있다.”

사위도 말했다. “아내와 결혼 전에 약속한 것이 있다. 두 사람이 싸움을 하더라고 결코 하루를 넘기지 않기로 했다.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싸워본 기억도 없다.”

박철우(오른쪽)는 신치용 감독에게 ‘우승’과 ‘손주’ 두 선물을 안길 각오다. 용인|박화용 기자
박철우(오른쪽)는 신치용 감독에게 ‘우승’과 ‘손주’ 두 선물을 안길 각오다. 용인|박화용 기자

○그래도 힘든 것은 있다

아무리 좋아도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장인과 사위 사이에 힘든 점은 있다. 돈 문제다.

그동안 신 감독은 비자금이 있었다. 구단에서 때때로 나오는 격려금을 혼자 관리했다. 사위는 딸에게 그것을 맡겼다. 비밀이 새 나갈 수밖에 없다. 사위의 술 내공이 떨어지는 것도 장인에게는 만족스럽지는 않다. 사위와 함께 있다보니 장인은 더욱 행동에 조심하게 됐다.

신 감독은 3월28일 할아버지가 될 예정이다. 2011년 9월3일 결혼한 박철우-신혜인 부부에게 태어나는 첫 번째 사랑의 결실이다. 그 날은 챔피언결정전 3차전이다. 사위는 장인어른, 아니 감독님에게 그날 동시에 2개의 선물을 안길 수도 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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