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짜 감독의 오기, 모래알 팀을 알짜로… SK 사상 첫 정규리그 우승 이끈 문경은 감독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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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012시즌 개막전이 열린 2011년 10월 13일. 그는 감독 뒤에 ‘대행’이란 꼬리표를 달고 프로 사령탑 데뷔전을 치렀다. 결과는 참담했다. KCC의 안방 전주에서 26점 차 완패를 당했다. 역대 개막전 최다 점수 차 패배였다. 경기 후 구단 버스를 타고 전주에서 선수단 숙소가 있는 용인으로 돌아오는 동안 넋이 나가 있었다.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앉아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시선은 바닥에 꽂아 놓았다. 숙소에 들어가서도 눕지 못했다. 소파에 앉아 오전 4시까지 줄담배를 물었다. 그는 당시 “막막했다”고 했다. 시즌을 제대로 마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가 지휘하는 SK는 2011∼2012시즌을 9위로 마쳤다.

17개월 전 혹독한 사령탑 신고식을 치렀던 전주에서 그가 팀에 정규리그 우승을 안겼다. ‘대행’이란 꼬리표를 떼고 정식 감독이 된 첫 시즌에 팀을 리그 정상으로 이끈 것이다. SK는 9일 전주 방문 경기에서 KCC를 73-66으로 꺾고 남은 4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2012∼2013시즌 정규리그 1위를 확정했다. SK의 정규리그 우승은 1997년 창단 후 16년 만에 처음이다. 그동안 안준호 최인선 이상윤 김태환 김진 신선우 등 내로라하는 감독들이 거쳐 갔지만 한 번도 없던 정규리그 우승이다.

1위를 확정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구단 버스 안. 이번엔 휴대전화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축하 전화를 받고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느라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른다. 평소 볼 시간이 없어 녹화해 둔 TV 드라마를 틀어 놨지만 전화를 받느라 결국 또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17개월 전의 줄담배가 아닌 말술로 날을 새웠다. 9일 오후 11시부터 시작된 축하 회식 자리가 다음 날 오전 5시에야 끝이 났다.

SK의 정규리그 우승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번 시즌 개막을 앞두고 SK는 “잘해야 6강”이란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그는 “감독이 초짜라 팀이 무시를 당하나 싶은 생각에 선수들한테 미안했다”고 말했다. 시즌 초반 SK가 선두를 달릴 때도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며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순하기로 소문난 그가 역정을 낼 정도로 듣기 싫어하는 말이다.

프로농구 대세 김선형, 리그 최고 용병으로 평가받는 애런 헤인즈, 신인왕 후보 1순위 최부경. 이번 시즌 SK의 환골탈태를 설명할 때 단골처럼 등장하는 이름들이다. 하지만 그는 ‘뭉쳐야 산다’는 팀 분위기가 자리 잡은 것을 정규리그 우승의 가장 큰 동력으로 꼽았다. 그는 “그동안 SK는 모래알 팀이라는 부정적인 평가가 따라다녔다. 인정하는 부분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름값 하는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면 숙소가 아닌 집에서 자고 오곤 했다. 이제는 뭉쳐야 산다는 분위기가 자리를 잡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감독이 되자마자 주전이든 벤치 멤버든 혼자 잘났다고 설치는 건 그냥 두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아침에 체육관에 모여 다 같이 자유투를 던지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게 했고 밥도 반드시 함께 모여 먹게 했다.

정식 감독 1년 차에 정규리그 정상을 맛본 문경은 SK 감독. 그는 “막내 감독이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연차가 낮은 감독이라고 목표까지 낮을 수는 없다. 나는 그냥 10명의 감독 중 한 명이다.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다. 반드시 플레이오프까지 통합 우승을 이루겠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한편 승부조작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된 강동희 감독이 벤치를 비운 동부는 10일 삼성에 67-97로 30점 차 완패를 당했다. 9일 모비스전부터 김영만 코치가 팀을 이끌고 있는 동부는 김 코치에게 남은 시즌 지휘를 맡기기로 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SK 정규리그 우승#문경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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