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지키는 천하 女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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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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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엔 청원경찰 밤엔 씨름여왕 박미정

누난 씨름 스타일 여자 씨름의 ‘헤라클레스’ 박미정이 12일 경기 용인종합운 동장 내 씨름장에서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안무 마지막 동작을 따라해 보이며 끼를 발산하고 있다. 박미정은 낮에는 청원경찰로 일하기 때문에 주로 밤에 씨름 훈련을 한다. 용인=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누난 씨름 스타일 여자 씨름의 ‘헤라클레스’ 박미정이 12일 경기 용인종합운 동장 내 씨름장에서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안무 마지막 동작을 따라해 보이며 끼를 발산하고 있다. 박미정은 낮에는 청원경찰로 일하기 때문에 주로 밤에 씨름 훈련을 한다. 용인=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여자 씨름선수라는 사실이 부끄럽냐고요? 아니요. 저는 씨름선수라는 게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시원시원한 말투, 넉넉한 마음씨, 탄탄한 몸, 그리고 가끔씩 보이는 애교까지…. 그는 여러 면에서 씨름선수 출신 예능인 강호동의 특징을 닮았다. 무엇보다 그의 씨름에 대한 진한 애정은 강호동 이상이었다.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씨름판에서 ‘여자 헤라클레스’로 불리며 강호동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박미정(26). 그를 12일 경기 용인종합운동장 내 씨름장에서 만나 여장사로 살아가는 삶에 대해 들어봤다.

○ 낮에는 청원경찰 밤에는 씨름선수

박미정은 낮에는 용인 농협에서 청원경찰로 일하고 퇴근 후 씨름장에 간다. 그는 용인씨름동호회 회원들과 구슬땀을 흘리며 연간 10회 정도 열리는 전국단위 씨름대회 출전을 준비한다. 동호회에는 남자들도 있다. 그는 선수가 아닌 일반 남자들하고 대결해서는 별로 진 적이 없다고 한다. 박미정은 “프로 씨름이 없어지고 나서 씨름이 고사 위기를 맞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생활체육으로 씨름을 하는 동호인은 더 많아졌다”고 말했다.

박미정은 용인정보고 시절 용인대 유도학과 진학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2004년 유도체육관 관장의 추천으로 나간 용인시 씨름대회에서 덜컥 1등을 하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박미정은 2004년 단숨에 씨름계를 평정하며 전국 최강자로 우뚝 섰다. 박미정은 용인대 유도학과에 진학했지만 유도선수 생활은 하지 않고 씨름에 주력했다. 그의 시대는 2005년 이후 3년 동안 계속됐다.

○ 씨름여왕 임수정을 넘다

하지만 2008년 ‘씨름 여왕’ 임수정(27)이 등장하면서 박미정의 입지는 크게 줄었다. ‘무궁화급(80kg 이하급)에 출전해온 박미정(163cm)은 자신보다 신체조건에서 앞서는 임수정(172cm)에게 2009년부터 3년 동안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박미정은 “눈물이 별로 없는데 수정이 언니한테 질 때면 눈물이 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2012년은 박미정에게 특별하다. 박미정은 8월 전남 구례에서 열린 ‘국민생활체육대회 전국 여자 천하장사씨름대회’에서 숙적 임수정을 꺾고 천하장사에 오르며 한을 풀었다. 당시 승리 사진을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아두고 있는 박미정은 “항상 1-2로 아깝게 졌는데 당시엔 2-0(2승 1무)으로 완승했다. 모든 걸 가진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 박미정의 씨름예찬론

박미정은 씨름의 인간적인 매력을 강조했다. “모래 위에서 하니까 다리에 무리가 덜 간다. 격투기처럼 과격하지도 않다. 무엇보다 상대와 살을 맞대고 교감할 수 있는 인간적인 운동이다.”

박미정은 8월 천하장사가 된 후 용인농협 직원이 됐다. 용인농협은 ‘천하장사가 지켜주기 때문에 전국에서 가장 안전한 금융기관’으로 소문이 나는 등 박미정 효과를 보고 있다고. 농협 직원들은 박미정의 대회 때마다 버스를 전세 내 응원을 갈 정도로 열성적인 응원군이다. “씨름은 내게 모든 걸 이루게 해줬다. 40대, 50대가 되어도 현역 생활을 계속해 씨름 알림이로 활동하고 싶다.”

용인=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여자씨름#박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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