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을 던질 때는 이렇게….” 이강철 넥센 수석코치가 지난 달 일본 가고시마 전지훈련에서 후배에게 투구 동작을 가르치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그는 올 시즌 직후 정든 고향 광주 KIA를 떠나 서울 연고팀 넥센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이 코치는 “김병현 등 넥센 투수들에게서 가능성을 봤다. 그들의 가능성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넥센 히어로즈 제공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를 던졌죠.”
넥센 이강철 수석코치(46)는 10월 초 넥센 염경엽 감독(44)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을 때의 느낌을 이렇게 기억했다. 당시 KIA 투수코치였던 이 코치는 광주일고 2년 후배인 염 감독으로부터 “넥센으로 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뜻밖의 제안이었다. ‘광주 토박이’는 며칠을 고민하다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는 순간이었다. 5일 광주의 한 식당에서 이 코치를 만나 고향을 떠나는 소회를 들었다.
○ 벼랑 끝으로 스스로를 내몰다
이 코치는 국내 최고의 언더핸드스로 투수이자 광주의 간판스타다. 1989년 해태(현 KIA)에서 데뷔해 ‘10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현역으로 보낸 16시즌 중 자유계약선수(FA)로 삼성으로 이적해 뛴 2000년을 제외하곤 모두 타이거즈에서 뛰었다.
그는 지도자로도 탄탄대로였다. KIA에서 안정된 일자리를 보장받았다. 그러나 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더 큰 성장을 위한 도전을 택했다. 이 코치는 “벼랑 끝으로 나 자신을 내몰았다”고 표현했다. “고향을 떠난다는 게 부담이 크다. 그럼에도 내 역량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수석코치라는 자리가 매력적이었다. 투수진 운영의 전권을 맡겨준 염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
○ 선동열 감독의 든든한 한마디
이 코치는 염 감독의 전화를 받은 뒤 KIA 선동열 감독(49)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고교(광주일고)와 프로 선배였기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침 ‘타이거즈 맨’이었던 김응용 감독과 김성한 이종범 코치가 한화 유니폼을 입은 상황. 그 와중에 이 코치마저 넥센으로 간다고 하면 선 감독이 어떤 감정일지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선 감독은 큰 풍채만큼이나 마음 씀씀이도 컸다. 그는 이 코치에게 술잔을 권하며 “이왕 가기로 한 거 가서 잘하라”고 격려했다. 이 코치에겐 천군만마 같은 한마디였다. 그는 “선 감독이 이해해주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고 했다.
○ 이강철+김병현=?
이 코치가 넥센으로 오면서 투수 김병현과의 시너지 효과에 관심이 쏠렸다. 이 코치는 “김병현은 욕심나는 언더핸드스로 투수다. 내년에 선발 투수로 제몫을 할 것”이라고 했다. 김병현과 상의해 투구 폼을 다듬을 예정이다. 다만 올해 김병현의 공 배합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시했다. “김병현은 좋은 공을 갖고 있음에도 어려운 승부를 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그랬다. 쉽게 승부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다.”
이 코치는 11월 일본 가고시마에서 진행된 마무리훈련에서 신인투수 한현희(19)를 조련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김병현과 같은 언더핸드스로 투수인 한현희가 이번 마무리훈련에서 투구 폼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내년에 핵심 셋업맨이 될 거다. 후배의 변화가 김병현에게는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 우승해본 자의 ‘자신감’
이 코치는 현역 시절 한국시리즈 우승을 5번이나 경험했다. 정상에 섰을 때의 자신감을 아직도 기억한다. 지금 넥센에 필요한 게 그런 자신감이다. 염 감독은 “올 시즌 여름이 되면서 넥센이 성적이 떨어진 건 자신감 부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코치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넥센 투수들이 자기 공에 확신을 갖지 못했다. 볼넷이 많아지고 제구력이 흔들렸다. 이기는 마음가짐부터 가르치겠다”고 말했다.
이 코치는 ‘남들이 두려워하는 넥센’을 꿈꾼다. 이번 마무리훈련에서 선수 개개인의 뛰어난 잠재력을 확인했다. 이제 그 잠재력을 깨우는 돌멩이 역할을 하는 건 이 코치의 몫이다.
:: 이강철은? ::
▽생년 월일=1966년 5월 24일생 ▽경력=광주 서림초-광주 무등중-광주일고-동국대-해태-삼성-KIA-KIA 코치-넥센 코치 ▽통산 전적=16시즌 152승 112패 53세이브 평균자책 3.29 ▽1989∼98년 10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 1996년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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