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선아, 恨 풀어줘 고마워” “뜀틀되어 준 감독님 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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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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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동 체조 총감독 - 양학선 아름다운 이별

‘뜨거운 안녕!’ 제자는 이 뜀틀에서 수천 번 넘어졌다 다시 일어났다. 스승은 제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과학적인 데이터로 만들어 성공의 밑거름을 조성했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체조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낸 양학선(왼쪽)과 조성동 총감독. 조 총감독이 12월 대표팀 지도자 은퇴를 선언해 이별을 앞둔 금빛 사제가 추억이 어린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선수촌 체조훈련장 내 뜀틀 앞에서 손을 맞잡으며 ‘초심을 잃지 말자’고 다짐하고 있다. 런던 올림픽 금메달 획득 후 서로를 부둥켜안고 감격을 나누고 있는 두 사람(아래 사진).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뜨거운 안녕!’ 제자는 이 뜀틀에서 수천 번 넘어졌다 다시 일어났다. 스승은 제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과학적인 데이터로 만들어 성공의 밑거름을 조성했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체조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낸 양학선(왼쪽)과 조성동 총감독. 조 총감독이 12월 대표팀 지도자 은퇴를 선언해 이별을 앞둔 금빛 사제가 추억이 어린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선수촌 체조훈련장 내 뜀틀 앞에서 손을 맞잡으며 ‘초심을 잃지 말자’고 다짐하고 있다. 런던 올림픽 금메달 획득 후 서로를 부둥켜안고 감격을 나누고 있는 두 사람(아래 사진).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 “(양)학선아, 호랑이 선생님 떠난다니까 솔직히 좋지?”(체조대표팀 조성동 총감독)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감독님 없으면 저 어떡하지요?”(런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양학선)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체조 사상 첫 금메달을 합작한 양학선(20·한국체대)과 조성동 총감독(65)은 올해를 끝으로 각자의 길을 걷는다. 양학선을 올림픽 챔피언으로 키운 조 총감독이 12월 대표팀 지휘봉을 놓기 때문이다. 올림픽 후 첫 대표팀 소집훈련이 시작된 12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선수촌에서 금빛 사제를 만나 그간의 소회를 들어봤다. 》
○ 금빛 사제의 아름다운 이별

양학선은 “극한까지 몰아붙이던 스승이 미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훈련이 없었다면 올림픽 금메달도 없었을 것이다. 마치 오래된 연인과 헤어지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대표팀 지도자 생활을 마감하는 조 총감독도 만감이 교차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1979년에 처음 대표팀 감독이 된 후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유옥렬(39·대표팀 코치),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여홍철(41·경희대 교수) 등 유력 후보들이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후 서울체고 교사로 후진을 양성하다 ‘베테랑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대한체조협회의 요청에 따라 2009년 구원투수처럼 다시 대표팀 감독으로 나서 금메달을 이뤄 냈다.

조 총감독은 “사람은 떠날 때를 알아야 한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으로는 한국 체조가 발전할 수 없다. 박수 칠 때 떠날 수 있게 금메달 한을 풀어준 학선이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맙다”고 말했다.

○ 스승 “올림픽 후유증 잘 이겨내렴”


양학선은 런던 올림픽 후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각종 행사에 참여하느라 고향 집에 단 이틀밖에 있지 못할 정도로 바빴다. 제대로 된 휴식 없이 대표팀에 소집돼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상태다. 양학선은 “올림픽 금메달을 따기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지쳤다”고 토로했다.

양학선은 비닐하우스에서 살고 있는 부모님이 공개되는 등 사생활이 지나치게 노출되는 것도 달갑지 않다고 했다. 그는 “많은 분이 금전적 지원을 해주셔서 감사했다. 하지만 과도한 관심과 일부 악성 댓글은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며 “금메달 땄을 당시에는 눈물이 안 났는데, 귀국 후 눈물이 났다”고 아픈 속내를 드러냈다.

스승은 이런 제자를 따뜻한 말로 다독였다. “학선이는 한국 체조계의 보물이다. 더 큰 사람이 돼서 할 일이 많다. 올림픽 후유증이 학선이를 더 단단하게 할 것이다.”

○ 제자 “스승과 헤어지는 게 두렵습니다”

사제는 올림픽 뒷이야기들도 공개했다. 양학선은 올림픽을 앞두고 구름판 공포에 시달렸다. 런던에서 현지 적응 훈련 중 구름판을 잘못 밟아 크게 다칠 뻔했다. 이로 인해 심리적 부담이 더 커졌다. 구름판에 대한 적응이 안 되면서 공중 동작 후 착지도 불안해졌다. 뜀틀 결선 하루 전까지도 착지가 잘 안됐다. 조 총감독은 “학선이는 3일을 주기로 착지 성공률이 오르락내리락 했다. 결선 당일에는 주기상 착지 성공률이 최고점에 오른다는 점을 계속 학선이에게 인식시켜 구름판과 착지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게 했다”고 회상했다.

조 총감독은 2009년 봄 당시 광주체고 2학년이던 양학선을 국가대표팀에서 탈락시켰던 일화도 공개했다. 당시 막내였던 양학선은 엄격한 대표팀 선후배 관계에 치여 제대로 훈련에 집중하지 못했다. 조 총감독은 “학선이를 곁에 두고 싶었지만 보호하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고향으로 돌려보냈다”고 회상했다. 조 총감독은 2009년 말 세대교체를 단행하면서 양학선 등 고교생 유망주 6명을 다시 발탁해 경쟁구도를 만들었다. 이들은 런던 올림픽 주전 선수들로 성장했다.

양학선과 조 총감독은 추억이 어린 태릉선수촌 체조훈련장 뜀틀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며 초심을 잃지 말자고 다짐했다. 스승은 “태릉을 떠나도 체조훈련장 앞 소나무가 돼 지켜보겠다”며 제자의 어깨를 꽉 잡았다. “이곳에서 수천 번 넘어질 때마다 묵묵히 지켜봐주셨는데…. 솔직히 감독님이 떠나시는 게 두렵습니다.” 제자는 말을 잇지 못하고 스승의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양학선#조성동 총감독#체조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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