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NK YOU, MOM ! ]<3>근대5종 황우진 키운 송미순 씨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3일 03시 00분


“그 힘든 길 잘도 걸어왔구나… 고맙다, 아들”

사랑이 주렁주렁 아들의 목에 걸렸던 메달을 들어 보이는 엄마의 미소가 환하다. 메달의 무게가 아무리 무거워도 가볍게만 느껴질 것 같다. 런던 올림픽 근대5종에 출전하는 황우진의 어머니 송미순 씨. 아들이 딴 35개의 메달이 모두 자랑스럽기만 한 그는 광주의 전셋집 거실 탁자 깊숙이 메달을 애지중지 보관하고 있다. 언젠가 내 집을 장만하면 아들의 방에 자랑스럽게 걸어 두고 싶단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사랑이 주렁주렁 아들의 목에 걸렸던 메달을 들어 보이는 엄마의 미소가 환하다. 메달의 무게가 아무리 무거워도 가볍게만 느껴질 것 같다. 런던 올림픽 근대5종에 출전하는 황우진의 어머니 송미순 씨. 아들이 딴 35개의 메달이 모두 자랑스럽기만 한 그는 광주의 전셋집 거실 탁자 깊숙이 메달을 애지중지 보관하고 있다. 언젠가 내 집을 장만하면 아들의 방에 자랑스럽게 걸어 두고 싶단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근대5종은 올림픽 종목이다. 사격, 수영, 육상, 펜싱, 승마 5가지 종목 점수를 합산하여 승부를 겨룬다. 절대적으로 힘들고 일반인들이 절대! 해선 안 될 운동이다. 돈도 많이 들고 힘들어 죽는다.’

무심코 고교 2학년 아들의 훈련일지를 펴 본 2007년 어느 날, 뜨거운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2012 런던 올림픽에 근대5종 대표로 출전하는 황우진(23·한국체대·사진)의 어머니 송미순 씨(48)였다. 아들이 힘들게 운동하고 있는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들의 삐뚤빼뚤한 글씨도 왠지 서러웠다. 변변찮은 집안 형편 때문에 뭐 하나 제대로 뒷바라지도 못해 줬다.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어머니 가슴 한구석에 묵은 짐처럼 남아 있다.

○ 씻기고 싶어 시작한 운동

시작은 우진이 초등학교 1학년이던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면서 우진의 가족은 쫓기듯 광주에서 전남 장성의 한적한 시골로 이사 갔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어머니는 빚을 갚기 위해 시누이가 운영하는 고깃집에서 처음으로 일을 시작했다. 자연스레 아들을 챙겨주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때부터 아들은 혼자 노는 법을 배웠다. 매일 산속 어딘가를 뛰놀다 꾀죄죄하게 돌아왔다.

우진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수영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는 수영을 하겠다는 아들이 반가웠다. 수영을 하면 깨끗하게 씻을 수는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당시 네 가족은 150만 원짜리 컨테이너 건물에서 살았다. 변변한 샤워시설도 없었다. 우진은 수영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지역 대회를 휩쓸며 이름을 알렸다. 육상에도 소질이 있었다. 취미 삼아 나간 장성군 학년별 육상대회 600m에서 3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때부터 근대5종에 대한 자질을 보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송 씨는 식당일에 묶여 아들 곁을 지킬 수 없었다.

물론 송 씨가 그렇게 열심히 일한 덕에 6년 만에 빚을 갚고 온 가족이 다시 고향 광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컨테이너에서 3층 옥탑방을 거쳐 작은 전세아파트로 옮긴 것도, 자그마한 식당을 하다 최근 노래방을 운영하고 있는 것도 송 씨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래도 초등학교 이후 아들과 찍은 사진 한 장 없는 건 지금도 한으로 남아 있다.

○ 말보다 더 큰 사랑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우진은 어렸을 때부터 말이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우진이 얼마나 힘든지 알 길이 없었다. 훈련일지를 훔쳐보며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러다 광주체고 3학년에 다니던 아들이 동료들과 숙소를 무단이탈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한 번도 삐뚤어진 적 없던 우진이었다. 당시 우진은 척추분리증을 앓아 허리가 아픈 상황이어서 격한 훈련을 피해 무작정 목포로 달아난 것이었다.

보름 넘게 행방불명이던 우진을 찾은 곳은 목포의 한 주유소였다. 우진은 어머니를 보고 펑펑 울더니 집에 돌아오는 길에 흰 봉투를 꺼냈다. 그 안엔 꼬깃꼬깃해진 만 원짜리 30장이 있었다. 우진이 숙소 이탈 후 집에 손을 벌리지 않기 위해 낮엔 PC방에서 자고 밤에 주유소에서 일하며 모은 돈이었다.

우진은 여전히 무뚝뚝하다. 송 씨가 “엄마 사랑하니 안 하니”라고 열 번 물으면 “기여∼”라고 한 번 대답할 뿐이라고 한다. 국제대회에 출전하러 해외로 나가도 그저 공항에서 “엄마 나 간다”라고 전화 한 번 하고 만다. 송 씨는 이제 안다. 그게 우진만의 사랑 표현 방식임을.

17세 우진의 훈련일지는 단순히 힘들다는 신세 한탄으로 끝나지 않았다. ‘근대5종은 비인기종목이다. 근데 뭐…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 연봉 2억 원을 꿈꾸며! 파이팅 근대5종!’

그로부터 5년이 흘렀다. 이제 황우진은 런던 올림픽에서 사상 첫 근대5종 메달을 노린다. 멀리서 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할 어머니를 그리며….

광주=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스포츠#THANK YOU MOM#근대 5종#황우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