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자, 발 아닌 머리로 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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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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뛸까말까 투구-수비 교란
“우리에겐 도루가 바로 홈런”

그는 2006년 SK에 입단해 지난해까지 불과 5경기밖에 못 뛴 무명이었다. 데뷔 7년차지만 올 시즌 전까지 안타 하나 없었다. 하지만 대주자로서 그의 주루 능력은 남달랐다. 빠른 발로 꾸준히 득점을 쌓았다. 그는 호수비까지 수차례 선보이며 실력을 인정받아 어느새 팀의 주전 좌익수로 자리 잡았다. 그의 이름은 김재현(25)이다.

대주자는 1군에 살아남기 좋은 포지션이다. 작전상 팀에 한두 명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독의 눈에 띌 기회를 많이 잡는 편이다. 대주자는 당연히 발이 빨라야 하지만 그만큼 머리 회전도 빨라야 한다. 김재현은 대주자로 뛸 때 타석에 있는 동료가 치기 좋은 공을 유도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그는 “대주자로 나서면 계속 허리를 좌우로 흔들며 도루를 할 듯 말 듯한 인상을 준다. 항상 상대 배터리를 헷갈리게 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움직임을 본 상대 포수는 도루 견제를 위해 투수에게 타자가 치기 좋은 바깥쪽 공을 요구할 확률이 높아진다. 수비수들 역시 언제 도루할지 몰라 긴장하게 된다.

대주자는 또 타구가 뻗는 순간 뛸지 말지 혹은 어디까지 갈지를 동물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상대 투수가 어느 타이밍에 구속이 느린 변화구를 던질지 예측해야 도루에 성공할 수 있다. LG 대주자 요원 양영동은 “경기 때마다 계속 상대 투수를 보며 퀵 모션 속도나 변화구 타이밍을 머릿속에 새겨 놓는다”고 했다. 그는 지난달까지 주전과 대주자를 오가며 활약했지만 왼쪽 손목 부상을 당해 잠시 2군으로 내려갔다.

대주자의 최종 목표는 선발 라인업에 포함되는 주전이다. 그래서 주루뿐 아니라 타격도 꾸준히 연습한다. 대주자는 대부분 마른 체형이지만 힘을 늘리기 위해 체중을 불릴 수는 없다. 대주자로서의 순발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삼성 대주자 요원 강명구는 “대주자에게 도루는 홈런”이라고 했다. 그만큼 수비의 집중 견제를 받는 대주자가 도루를 성공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대주자들은 오늘도 베이스에 서서 ‘홈런 부럽지 않은’ 도루를 한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대주자#도루#김재현#강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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