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싸고 있던 유선영, 연못의 神을 홀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3일 03시 00분


■ LPGA 시즌 첫 메이저 나비스코챔피언십 우승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크래프트 나비스코챔피언십에는 전통이 있다. 우승자는 18번홀 그린 뒤 ‘포피 폰드’에 뛰어드는 세리머니를 한다. 1988년 대회 챔피언 에이미 앨코트가 흥에 겨워 처음 다이빙을 한 뒤 연례행사가 됐다.

2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랜초미라지 미션힐스CC(파72)에서 열린 올해 대회에서 그 연못의 여인은 쉽게 결정되지 않았다. 마치 연못의 신이 변덕이라도 부리는 듯 선두권은 혼전을 거듭했다. 18번홀(파5) 그린에서는 탄식과 환희가 교차했다. 최후의 승자는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했던 유선영(26·정관장)이었다. 유선영은 최근 3주 연속 우승을 노리던 세계 랭킹 1위 청야니(대만)를 1타 차로 제친 뒤 연장전에서는 통한의 실수로 흔들린 김인경(하나금융그룹)마저 눌렀다. 캐디와 함께 연못으로 몸을 날린 유선영은 전화인터뷰에서 “물이 너무 차가워 덜덜 떨렸다. 생각지도 못한 우승이라 얼떨떨하다”며 웃었다.

선두에 3타 뒤진 공동 4위였던 유선영은 이날 최종합계 9언더파로 먼저 라운드를 끝냈다. 당시 10언더파였던 김인경이 18번홀에서 세 번째 샷을 홀 5m에 붙여 승부는 끝난 줄 알았다. 유선영은 “집에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캐디는 이미 옷도 갈아입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말골퍼들이라면 ‘OK(컨시드)’를 주고도 남을 30cm도 안 되는 김인경의 파 퍼트가 홀 오른쪽을 타고 한 바퀴 돌아 빠져나왔다. 김인경은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코를 꼬집더니 고개를 떨어뜨렸다. 마지막 조였던 청야니는 선두에게 2타 뒤진 채 18번홀 티박스에 올라 승부를 걸었지만 드라이버 티샷이 벙커에 빠져 투온이 힘들었다. 하지만 김인경의 보기로 한 타 차로 줄어들면서 동타를 노린 버디 퍼트가 홀을 살짝 빗나가자 청야니는 그린 위에 드러누워 안타까움을 토했다. 결국 18번홀에서 치른 연장전에서 유선영은 5.4m 버디 퍼트를 넣어 승부를 갈랐다. 우승상금은 30만 달러(약 3억4000만 원).

올 시즌 LPGA투어에서 코리아 군단은 번번이 청야니의 벽에 막혀 4차례 준우승에 머문 끝에 6개 대회 만에 첫 승을 신고했다. 이 대회에서는 2004년 박지은 이후 8년 만이다.

유선영은 어릴 때부터 강심장으로 유명했다. 서울 봉천동 언덕 위에 살 때 자전거와 인라인스케이트로 내리막길 달리기를 즐겨 동네에서 유명인사로 통했다. 11세에 골프를 시작해 국가대표를 거친 뒤 대원외국어고 3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 2005년 LPGA 2부 투어인 퓨처스투어에서 상금 5위에 올라 2006년 LPGA 정규투어에 입성했고 2010년 사이베이스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데뷔 첫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해 한국인삼공사가 창단한 정관장 골프단에 입단해 든든한 스폰서를 얻은 그는 바로 다음해 프로 2승째를 메이저 타이틀로 장식한 것이다.

반면 청야니는 최연소 그랜드슬램을 노렸던 지난해 US여자오픈에서 유소연에게 패한 뒤 이 대회에서는 유선영에게 역전패를 당했다. 독주체제를 굳힌 것 같던 청야니에게 한국 선수들은 역시 강력한 대항마였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LPGA#유선영#청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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