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올림픽서 亞 선수 첫 해머던지기 金
부상 후유증 털고 37세에 대구서 화려한 부활
벗어진 이마와 백발은 60대의 나이를 짐작하게 했지만 형형한 눈빛은 여전했다. 1970, 80년대 해머던지기 아시아 챔피언 무로후시 시게노부(66)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경기를 지켜봤다. 아들을 향해 미소 짓던 승리의 여신은 끝까지 다른 곳을 보지 않았다. 우승이 확정된 순간 관중석의 아버지는 두 팔을 번쩍 든 채 자리를 박찼다. 아들의 우승 소감은 “아버지께 고맙다는 말을 다시 전하고 싶다”였다.
‘황색 헤라클레스’ 무로후시 고지(37·일본)가 화려하게 부활했다.
고지는 29일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남자 해머던지기 결선에서 81.24m로 크리스티안 프르스(81.18m·헝가리)의 막판 추격을 따돌리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고지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우승했다. 1위였던 아드리안 아누시(헝가리)가 약물 복용으로 메달을 박탈당하면서 금메달을 땄다. 동유럽 선수들이 주름잡고 있는 투척에서 아시아 선수가 우승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지만 그는 엄밀히 말해 황인종이라고 볼 수는 없다. 어머니가 루마니아 출신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1970년 방콕 대회를 시작으로 아시아경기 5연패를 달성했지만 국제무대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다. 1972년 뮌헨 올림픽 8위, 1983년 헬싱키 세계육상선수권 11위에 그쳤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목표를 대를 이어서라도 이루고자 루마니아 창던지기 국가대표와 결혼해 고지를 낳았다. 역시 해머던지기 선수인 여동생 유카(34)는 오빠만큼은 못했지만 지난해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 동메달을 땄다.
아들은 아버지의 바람대로 육상에 재능을 보였다. 187cm, 99kg의 체격은 서양인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고 100m를 10초대에 주파할 정도로 순발력도 뛰어났다. 만능 육상선수였지만 아들은 결국 아버지의 뜻대로 해머를 잡았고 곧 두각을 나타냈다. 2003년 6월에 세운 84.86m의 당시 세계기록은 여전히 아시아기록으로 남아 있다.
고지는 그동안 세계선수권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2001년 에드먼턴에서 은메달을, 2003년 파리에서 동메달을 땄던 그는 자국에서 열린 2007년 오사카 대회에서는 6위에 그쳤다. 부상 탓에 2009년 베를린 대회는 출전조차 못했다. 기록은 하락세를 거듭했다. 그러나 올림픽에서 우승한 지 7년 만에 드디어 세계선수권에서도 극적으로 정상에 올랐다. 그의 아버지는 두 가지 소원을 모두 이뤘다. 조국에 대회 첫 금메달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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