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전적 ‘24전 무승’ 美 상대로… 승부차기 끝에… 日 여자축구 월드컵 첫 우승에 열도 감격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쓰나미 영상 보며 이 악문 그들… 포기란 없었다

“세계 1위입니다. 미국을 이겼습니다. 너무 통쾌하고 짜릿합니다.”(대학생 엔도 세이지)

“여자대표팀이 일본의 자존심을 지켜줬습니다. 최고입니다.”(대학생 호소카와 류)

18일 일본열도가 오랜만에 활짝 웃었다. 이날 새벽 치러진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월드컵 결승전에서 일본이 미국을 꺾고 우승을 확정짓자 일본 국민들은 거리로 몰려나와 환호성을 지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사고 후 잔뜩 움츠려 있던 일본 사회에 활기를 되찾아주는 값진 선물이었다.

이날 오전 도쿄 긴자(金座)의 백화점 주변에서 만난 50대 주부 야마모토 미유키 씨는 “여자대표팀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일본의 자존심과 저력을 보여줬다. 이제 일본도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60대의 한 남성은 “오늘 승전보가 동일본 대지진 복구에 큰 힘이 되기를 바란다”며 “옥신각신하는 일본 정치권이 여자축구팀을 좀 닮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본 국민들은 이날 극적인 역전 우승을 대지진 후 난관에 봉착한 일본인의 승리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미국에 먼저 골을 허용하고 시종일관 리드당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투지와 정신력으로 버텨낸 값진 승리라는 것이다. 이날 일본 여자대표팀은 후반 24분에 미국에 한 골을 먼저 내준 뒤 동점골을 터뜨려 연장전에 들어갔다. 연장전 전반에도 먼저 실점해 패색이 짙었지만 연장 후반에 다시 동점골로 균형을 맞춘 뒤 승부차기에서 3-1로 승부를 갈랐다. 득점왕(5골)과 MVP를 싹쓸이한 사와 호마레 선수는 경기 출전에 앞서 일본 동북부 지역을 강타한 지진해일 동영상을 보며 전의를 불태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NHK 등 일본 방송은 이날 승전보를 전하면서 “대지진과 원전사고, 전력난 등 우울한 뉴스에 속상해하던 일본인들에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해준 값진 경기였다”고 평가했다. 대지진 후 4개월이 넘도록 좀처럼 뒷수습이 되지 않고 있는 답답한 현실을 한 방에 날렸다는 것이다.

아사히신문과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주요 일간지도 호외를 발행해 극적인 우승 소식을 전했다. 일본 언론들은 “일본 여자대표팀이 지금까지 24차례나 싸워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던 미국을 꺾고 사상 첫 우승을 했다”고 전했다. 마이니치신문도 “8강전에서는 월드컵 3연패를 노리는 독일을, 준결승에서는 전통 강호 스웨덴에 역전승했다”며 “일본 여자축구대표팀이 생긴 지 30년 만에 거둔 일본 축구사의 쾌거”라고 소개했다.

일본 여자축구대표팀의 월드컵 우승이 침체에 빠진 일본 경제에 숨통을 틔워줄 것으로 기대하는 목소리도 높다. 일본의 한 민간경제연구소는 이번 우승이 1조 엔(약 13조5000억 원) 이상의 소비부양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접전 끝에 미국이 일본에 패하자 곧바로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열심히 싸운 미국대표팀이 한없이 자랑스럽다”고 위로를 전하며 “월드컵 챔피언 일본에 축하를 보낸다”고 밝혔다. 미국 언론들은 미국이 패했지만 첫 월드컵 우승컵을 안은 일본이 올해 들어 잇따른 재난을 겪었다는 점에서 일본과 일본인에게 이 우승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