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에서 온 프로축구 수원의 알렉산더 게인리히(27)는 김치를 못 먹는다.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고춧가루가 들어간 음식은 입에 대지도 못한다. 주로 스파게티와 고기 반찬을 먹는다. 한국에 온 지 일주일도 안 됐다. 적응이 덜 된 탓인지 조용히 지내고 있는 그이지만 수원에 오자마자 또 다른 우즈베키스탄 선수 세르베르 제파로프(29·서울)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희 팀도 좋은 팀이고 우리 팀도 좋은 팀이다.” 서로에게 전하는 격려이자 라이벌 구도를 예고하는 매운 도발이기도 했다.
한국 프로축구는 그들에게 또 다른 거대한 격전장이다. 두 선수는 우즈베키스탄 축구의 국민영웅이다. 수원 관계자에 따르면 ‘우즈베키스탄의 박주영’에 비유할 수 있는 특급스타다.
두 선수는 올해 아시안컵에도 국가대표로 함께 출전해 우즈베키스탄을 4위로 이끌었다. 게인리히는 한국과의 3, 4위전에서 2골을 넣었던 바로 그 선수다. 아시안컵에서 게인리히가 3골을 넣으며 전방에서 공격을 주도했고 제파로프는 중원에서 팀을 조율하며 2골 2어시스트로 뒤를 받쳤다. 두 선수가 우즈베키스탄이 넣은 10골 중 5골을 넣었다.
두 선수는 우즈베키스탄 프로축구에서도 라이벌이었다. 제파로프가 뛰던 부뇨드코르와 게인리히가 뛰던 파흐타코르는 우즈베키스탄 리그의 양대 산맥이다. 두 팀의 격돌은 한국 프로축구 수원과 서울의 대결만큼이나 뜨거웠다. 둘은 양 팀의 간판스타였다.
그랬던 그들이 한국 프로축구 최대 라이벌 수원과 서울로 옮겨와 라이벌전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시작은 제파로프가 먼저 했다. 2008년 19골로 우즈베키스탄 리그 득점왕에 올랐던 그는 그해 아시아축구연맹(AFC) 올해의 선수에 선정됐다. 잉글랜드 명문 첼시로부터 입단 테스트 제의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주요 경기들을 앞두고 있던 구단이 그에게 기회를 주지 못했다. 제파로프는 지난해 중반 서울에 합류해 탁월한 패싱 능력을 선보이며 1골 7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서울은 제파로프의 가세로 날개를 달아 우승고지에 올랐다. 제파로프는 최전방 공격도 가능하지만 밀집수비를 뚫고 넣어주는 절묘한 패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올해에는 게인리히가 한국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6일 역대 개막전 최다 관중이 몰린 수원-서울전에 출전해 제파로프가 보는 앞에서 멋진 결승골을 넣었다. 경기가 끝난 뒤 말한 소감이 “제파로프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였다.
게인리히는 발바닥을 많이 사용하는 브라질 등 남미 용병과는 다른 독특한 드리블 스타일을 갖고 있다는 평. 최전방에서 자주 고립되는 모습을 보이지만 득점에 필요한 개인기를 갖췄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