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프로골프(PGA)투어의 한국인 개척자라고 할 수 있는 최경주는 어디를 가든 사인 공세를 받는다. PGA투어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지난해 34개 대회 중 17개 대회의 챔피언은 미국 이외의 국가 출신이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이젠 미국프로골프(PGA)투어도 인종의 용광로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다양한 피부색에 다채로운 언어를 구사하는 해외파들의 진출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올 시즌 외국 국적을 지닌 PGA투어 멤버는 22개국 80명에 이른다. 1983년에는 21명에 불과했다. 2009년 19개국 70명에서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28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 인근의 토리파인스에서 개막한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에는 한국인 선수 5명과 미국 교포 2명이 총출동했다. 신인 강성훈은 1라운드에서 8언더파를 몰아쳐 단독 선두에 나서는 돌풍을 일으켰다. 지난주 밥 호프 클래식에서는 역시 올해 데뷔한 조나탄 베가스가 베네수엘라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PGA투어 챔피언에 올라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해외파 강세는 유럽 선수들이 주도하고 있다. 세계 랭킹 10위 안에 1위 리 웨스트우드(잉글랜드), 2위 마르틴 카이머(독일)를 비롯해 유럽 선수 6명이 포진했다. 유럽 선수가 1, 2위를 석권한 것은 1993년 닉 팔도, 베른하르트 랑거 이후 18년 만이다. 콧대가 높아진 유럽 선수들은 시즌 초반 PGA투어 출전을 외면할 정도까지 됐다.
PGA투어의 벽이 낮아진 데는 골프가 글로벌 스포츠로 떠오르면서 실력을 갖춘 고수들이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떠오르고 있기 때문. 어릴 적부터 미국으로 골프 유학을 떠났던 선수들의 기량도 급성장했다. 유럽과 일본 투어 등의 상금 규모와 경쟁력도 높아졌다. 유럽 투어의 선수들은 추위, 비바람 같은 악천후와 난도 높은 코스에서 생존력을 키웠다.
PGA투어에서 7승을 거둔 최경주, 아시아 최초로 메이저 챔피언에 오른 양용은 등은 골프의 변방이던 아시아에서 필드의 개척자로 불린다. 이들의 활약은 신체조건과 환경이 비슷한 아시아 지역의 어린 골프 유망주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꿈을 심어줬다.
반면 미국 선수들은 지난해 타이거 우즈가 무관에 그치는 등 절대 강자가 사라지고 슈퍼스타의 부진이 거듭되고 있다. 미국 골퍼 사이에는 외국 선수들이 쏟아지면서 자칫 일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생겨 외국인 출전 자격을 제한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지난해 PGA투어에서 34개 대회를 치르는 동안 2개 메이저 대회를 비롯해 17개 대회의 우승이 해외파에게 돌아갔다. 1946년부터 1989년까지 메이저 대회 우승자의 75%는 미국 출생의 골퍼였다. 지난해 브리티시오픈 우승자인 루이 우스트히즌(남아공)은 “이젠 몇몇 특정 선수가 아닌 누구라도 큰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 같다”고 말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골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다. 골프의 세계적인 저변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꿈의 무대라는 PGA투어를 향하는 발길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언젠가 무늬만 PGA투어라는 얘기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