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연재-한국의 여자루니 여민지의 축구일기] “악 무릎 파열!…좌절하지 말자, 곧 햇빛은 비춘다”

동아닷컴 입력 2010-09-25 07:00수정 2010-09-25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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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십자인대 파열…첫 시련

뉴질랜드 U-17 여자월드컵 포기

꼼꼼한 차트관리…재활기간 단축

부상회복 후엔 반성·지적도 체크
2009년 9월 21일 축구일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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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팀에게 악몽과 같은 선수가 되어라.
-경기를 한 순간에 바꿀 수 있는 자.
-누구도 예상치 못한 패스를 성공시키는 자.
-경기 전 상대방이 가장 두려워하는 자가 되라.

2008년은 여민지(17·함안대산고) 축구 인생에 가장 힘든 시기였다.

2008년 4월 오른쪽 무릎 전방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부상을 당했다. 당장 수술이 필요하고 재활에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는 의사의 소견이 나왔다. 그해 10월 뉴질랜드 U-17 여자월드컵 준비에 여념이 없던 그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그러나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 찬란한 햇빛이 기다리는 법.’(재활기간 일기 中) 여민지는 일기에 써 놓은 것처럼 보란 듯이 재기했다.

독한 재활 기간동안 많은 것을 깨달은 듯 그는 2008년을 ‘배움의 해’로 정의하고 있다.

○혹독한 재활을 딛고

예기치 않은 부상과 함께 여민지의 일기 쓰기도 잠시 멈췄다. 그러나 그의 재활 과정을 살짝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2008년 일기장 맨 뒤편에 다섯 페이지에 걸쳐 기록된 재활 차트다. 머리말에 ‘여민지 파이팅’이라는 제목과 함께 그 아래 ‘생생하게 꿈꾸면 이뤄진다. 안될 것도 될 것처럼’이라고 적혀 있다. 평소 일기와 다름없이 재활 차트 역시 꼼꼼하다. ‘상체자전거 15분 30회-스트레칭 15초 3세트-수건을 이용해 무릎 굽히기 10회 3세트-베개 누르기-베개 모으기-공 누르기-발목 가동-발목 강화’ 등 한 주에 소화해야 할 프로그램이 빼곡하게 나열돼 있다. 여민지는 수술을 받은 뒤 김포공항 인근 한 재활센터에서 이듬 해 1월까지 재활에 매달렸다. 의사가 예측한 기간을 1∼2개월 단축한 이듬 해 1월 당당히 학교로 복귀했다.

○다시 찾은 자신감

학교로 돌아온 2009년 1월부터 일기장은 다시 시작된다. 그러나 보다 큰 문제는 몸이 아닌 마음이었다. 2009년 1월 9일 여민지는 ‘오늘은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자신감도 없고…’라고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대산고 김은정 감독 역시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아 주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여민지는 포기하지 않았다. 2월 1일 ‘인간지사 새옹지마. 계속적이고 지칠 줄 모르는 일관성과 단호함이 승리한다. 누구에게나 삶을 깨우는 질문은 찾아온다. 그 질문을 수신하느냐 수신 거부하느냐는 물론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잠자는 것을 빼 놓고는 감각을 찾고 몸을 만드는 데 모든 시간을 쏟았다. 잃었던 자신감도 서서히 돌아왔다.

3월 어느 날에는 ‘요즘엔 하고자하는 동작들이 불안감이 많이 줄어서 예전과는 다르게 자신감과 의욕이 생겨서 즐거워요’라고 적었다. 의욕이 넘치는 여민지를 걱정한 듯 김은정 감독은 ‘첫 대회 절대 욕심내지 마라. 잘 하려고 하지 마라. 주위에서 무슨 말을 하든 무리하지 마라. 후반기를 노리자. 완전한 예전의 몸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라’고 당부했다.

부상에서 복귀한 뒤 일기장에 가장 눈에 띄는 건 이전과 달리 훈련 복기와 감상을 쓴 뒤 반드시 ‘반성’ ‘지적’란을 따로 만들어 체크해 놨다는 점이다. 자신의 단점을 부단히 고치려 노력하고 지도자들의 사소한 지적 하나도 놓치려하지 않는 태도가 지금의 여민지를 만들었다.
꽃보다 민지! 여민지(오른쪽)가 라커룸에서 동료와 함께 거울을 보며 익살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사진제공 | 대한축구협회

○상대 팀에 악몽과 같은 선수가 되어라

그저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린 하나의 선수 정도로 만족한다면 너는 여기에서 더 이상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 아니라면 상대팀에게 악몽과 같은 선수가 되어라.

경기를 한 순간에 바꿀 수 있는 자.

종료 직전의 페널티킥도 기꺼이 감수하는 자. 팀을 위해 피와 땀을 흘리는 것은 물론 팀원들을 피와 땀으로 물들일 수 있는 자. 누구도 예상치 못한 패스를 성공시키는 자.

한 번의 태클로 절망적인 수비를 결정적인 역습으로 바꾸어 놓는 자. 의심을 믿음으로 바꾸어 놓는 자. 돌아가는 버스 안을 싸늘한 침묵이 아닌 귀청 터질 듯한 자축의 노래로 넘치게 하는 자. 경기 시작 전 상대방이 가장 두려워하는 자가 되라. 증오와 존경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자. 감히 막을 수 없고 오직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자가 되라.

모든 경기 매 순간마다 너의 존재를 각인시켜라.

오늘도 내일도 훈련 중에도.

- 2009년 9월 21일 여민지의 일기 中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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