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연재-한국의 여자루니 여민지의 축구일기] “눈부신 유혹을 이기면 눈부신 성공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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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24일 07시 00분


다양한 축구 훈련 방법과 훈련을 하며 느낀점 등을 자세히 적어놓은 여민지의 축구 일기.
국경원 기자 | onecut@donga.com
다양한 축구 훈련 방법과 훈련을 하며 느낀점 등을 자세히 적어놓은 여민지의 축구 일기. 국경원 기자 | onecut@donga.com
또래 소녀들이 친구들과의 소소한 하루 일과를 다이어리에 적을 때 그는 훈련 과정을 정성스레 정리했다. 또래 소녀들이 캐릭터 인형과 스티커로 다이어리를 예쁘게 꾸밀 때 그는 색깔 펜을 꾹꾹 눌러가며 축구 전술을 꼼꼼하게 복기했다.

U-17 여자축구대표팀 ‘에이스’ 여민지(17·함안대산고)의 손때가 묻은 축구일기 여섯 권을 스포츠동아가 단독 입수했다. 꿈 많던 어린 소녀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스타로 발돋움하기까지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스포츠동아는 ①행복의 해 ②배움의 해 ③성공의 해 등 3회에 걸쳐 그의 성장 과정을 자세히 소개한다. 3회로 나눈 기준은 여민지의 다이어리에 적혀 있는 그대로다.


만14세에 19세이하 태극마크 달던 날
“미안해 언니들…자만않고 노력할게요”

기본기·전술·훈련 등 그림과 함께 기록
“꼼꼼하게 정리 잘했네” 담임 칭찬 적혀

밤을 잊은 야간훈련 코치에 지적받던날
“다리 두꺼워져 좋지만 키크려면 자야지”

여민지는 일기에서 2007년을 ‘행복한 해’, 2008년을 ‘배움의 해’ 2009년을 ‘성공의 해’로 정리하고 있다. 그녀에게 ‘행복의 해’였던 중학생 시절을 들춰본다.

○태극마크를 달다

2007년은 함성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여민지가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단 특별한 해였다.

만 14세의 나이에 17세 이하 대표팀이 아닌 19세 이하 대표팀에 발탁됐다. 당시 19세 이하 대표팀에 중학생은 여민지 한 명 뿐이었다.

대단한 ‘월반’이었다.

당시 U-19 아시아선수권을 준비하던 이영기 청소년대표팀 감독이 “함성중에 물건이 있다”는 말을 듣고 경기를 지켜본 뒤 “저런 선수가 한국에 있었느냐”며 당장 불러 들여 시험을 했다.

그 때부터 여민지에게는 늘 ‘천재소녀’라는 문구가 따라붙었다.

그러나 태극마크는 영광인 동시에 여린 소녀가 지기에는 너무도 무거운 짐이었다.

여민지는 일기에 ‘대표팀 된 게 너무 부담되고 언니들에게도 미안하고 눈치 보여요. 그러나 일단 됐으니 자만하지 말고 더 노력할께요’라고 담담하게 느낌을 적었다. 선배 언니들을 제치고 대표팀이 일원 된 중학생의 부담감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노력형 천재

여민지는 ‘노력형 천재’에 가깝다.

일기 곳곳에서 그런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중학교에 올라가던 해인 2006년 첫 페이지부터 4-4-2 시스템의 기초, 압박-슛-드리블 등 공격수의 기본기, 오프사이드 전술 등 축구에서 기본이 되는 움직임에 대한 것들이 그림과 함께 빼곡하게 적혀 있다.

패스 훈련 하나를 하더라도 이 훈련이 가진 의미와 숙지해야 할 내용을 반드시 명시해 놓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도표와 그림은 더 다양해지고 복잡해졌다. 마치 지도자 교본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축구를 처음 시작하는 이들이 길라잡이로 삼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뿐만 아니다. 매일 매일 새벽훈련, 오전훈련 1)웜 업 2)줄넘기 3)체육관 뛰기 30바퀴 4)타이어 끌기 5)근육 기르기 6)텀블링 7)정리 체조, 오후훈련 1)웜 업 2)드리블 3)헤딩 5번씩 4)게임 5)정리 체조 등 하루 일과를 꼼꼼하게 담았다. 담당 교사는 ‘일기를 아주 꼼꼼하게 정리를 잘했구나. 어느 누가 보더라도 민지 일기인지 알 것 같다’고 칭찬을 했다.
어린시절 여민지의 깜찍한 모습들.
어린시절 여민지의 깜찍한 모습들.

○고된 훈련을 딛고

“아프리카에서는 매일 아침 가젤이 잠에서 깬다. 가젤은 사자보다 더 빨리 달리지 않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온힘을 다해 달린다.

아프리카에서는 매일 아침 사자가 잠에서 깬다. 사자는 가젤을 앞지르지 못하면 굶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온힘을 다해 달린다. 네가 사자이든 가젤이든 마찬가지다. 해가 떠오르면 달려야 한다.”

2006년 12월 11일 일기에 적혀 있는 글귀다.

2006년 10월 18일에는 ‘눈앞의 마시멜로를 즉시 먹어 치우지 마라. 더 많은 마시멜로를 먹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라. 적당한 시기가 반드시 온다’ ‘눈부신 유혹을 이기면 눈부신 성공을 맞이한다’ ‘1달러에서부터 30일 동안 배로 늘려 가면 5억 달러가 넘는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생각하라’고 적었다. 이 문구에 큰 별을 3개나 달아 중요 표시를 해 놓았다.

여민지는 훈련이 고될 때마다 이렇게 마음을 다 잡았다. 목표 의식은 좌절하고 싶을 때 그녀가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이었고 이런 독한 마음이 지금의 여민지를 만들었다.

○축구중독

여민지는 ‘축구 중독’이다.

부족한 점을 보충하겠다고 심하게 야간 훈련을 해 지도자들이 “그러다 키 안 큰다. 운동 좀 그만해라”고 만류했다는 건 이미 유명한 일화다.

일기에서도 이런 모습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2006년 12월 8일에는 ‘다리 두꺼워진 건 좋은 거에요. 알도 많이 생기고요…(중략) 그리고 이제 야간 그럴 때 개인운동 안 할려구요. 한 번씩만 하구요. 키 커야죠”라고 익살맞게 써 놓았다.

그녀가 얼마나 독종이었고 이를 가까이서 지켜 본 지도자들이 자칫 그녀가 부상이라도 당하거나 성장이 더딜까봐 걱정했는지를 알 수 있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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