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나이퍼 부활? 운이죠, 아직 멀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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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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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A서 한화 이적 첫 홈런… 부활 서막 알린 장성호


《“한화 와서 장님 문고리만 잡았지요. 홈런은 한 개도 못 칠 줄 알았다니까요.” 9년 연속 3할 타자 장성호(33). 그는 기자와 대면하자마자 대뜸 엄살부터 부렸다. 3일 넥센전 결승타에 이어 8일 롯데와의 안방 경기에서 이적 후 첫 홈런을 날렸지만 전혀 성에 안 찬 기색이다. “스나이퍼 부활요? 운 좋게 제가 안타 치는 날 팀이 이겨서 그렇지. 아직 멀었어요.”》

한화의 오렌지색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장성호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지난해 시즌 후 KIA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유계약선수(FA)를 선언했다 갈등을 겪으며 제대로 훈련을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적이 성사됐지만 7월까지 극심한 타격 부진을 겪었다. 7개월 동안의 마음고생과 훈련 부족 탓이다. 장성호는 현재 몸 상태에 대해서도 단호히 말한다. “아직도 제 스윙이 안 나오고 있어요.”

그랬던 그가 8월 들어 확 달라졌다. 21타수 6안타를 치며 타격감을 끌어올리더니, 지난주 두 번이나 승부를 결정짓는 한 방을 터뜨렸다. ‘3번 타자’ 역할을 해내기 시작한 것이다. 한대화 감독도 “역시 베테랑이다. 장성호가 살아나면 최진행-김태완의 무게감도 배가 된다”며 장성호의 선전에 한껏 고무된 반응이다.

부활의 서막을 장식한 뒤 만난 첫 상대는 공교롭게도 애증의 친정팀 KIA. 10일 비로 KIA와의 청주 경기가 취소된 뒤 대전 용전동 한화이글스 실내연습장에서 만난 장성호의 얼굴엔 아쉬움이 가득했다. “솔직히 KIA와의 경기는 2, 3일 전부터 신경이 쓰여요. 다른 팀보다 더 철저하게 준비하게 되더라고요. KIA에선 그만두는 날까지 청춘을 다 바쳐서 후회는 없어요. 좋은 추억으로 남겨야지요.”

새 감독, 신진 선수들이 그야말로 새로운 팀을 재창조하고 있는 한화에서 장성호는 고참선수 한 명 이상의 의미가 있다. 특히 한화에 올해 처음으로 시즌을 소화하고 있는 어린 선수들이 많은 것은 장성호에겐 기회이자 책임감으로 다가온다. 그는 “코치가 해야 할 이야기와 선배가 잡아줘야 할 부분은 엄연히 다르다. 후배들에게 경기에 임하는 자세, 수비 위치, 상대 투수 구질 등 다양한 방면에서 생각하는 야구를 전파 중이다”고 밝혔다.

1996년 해태에 입단해 15시즌째 프로 무대를 누비고 있는 장성호는 올해 서른셋이다. 선배 양준혁의 은퇴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나이. 그는 “양준혁 선배의 안타 기록(2318개)은 꼭 제가 깨야겠다고 결심했다. 내년부터 4년간 죽어라 하면 근접할 수 있지 않을까”라며 조심스럽게 포부를 밝혔다. 10일 현재 장성호는 1775개의 안타를 기록 중이다. 양준혁과는 543개 차.

사막을 힘겹게 건너 오아시스에 당도한 장성호가 한화에 희망의 씨앗을 뿌릴 수 있을까. “올해는 정말 뭔가를 보여드릴 수 있는 힘이 없었어요. 팬들께 너무 죄송했어요. 하지만 내년엔 정말 크게 한 건 할 겁니다. 한화가 2년 안에 꼭 4강권에 들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그의 유니폼 등판에는 해태(KIA의 전신) 시절부터 간직한 등번호 1번이 선명했다.

대전=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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