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남아공]‘월드컵 첫 승’ 하나된 남아공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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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바파나 바파나(남아공 축구 대표팀 애칭)’를 지켜주실 겁니다.”

22일 인도양을 낀 남아공의 조용한 해안도시 더반. 남아공 대표팀의 노란 유니폼을 입은 파트리샤 에마나 씨(25·여)는 경기에 앞서 들뜬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정신력만큼은 바파나 바파나가 세계 최고”라며 “목소리가 쉴 때까지 그들을 응원할 것”이라며 웃었다.

이날 남아공은 블룸폰테인에서 프랑스와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가졌다. 앞서 2경기에서 1무 1패를 기록한 남아공은 사실상 16강 진출 가능성이 희박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열세인 프랑스를 큰 점수차로 이기고, 멕시코-우루과이 경기에서 승패가 갈리기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

불가능해 보였던 그 기적이 이루어지는 듯했다. 전반 20분 바파나 바파나가 선제골을 터뜨리자 더반의 해안가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앞에 모인 수천 명의 축구팬들 입에서 일제히 함성 소리가 터졌다. 부부젤라 소리는 고막을 찢을 듯 사방에서 뿜어져 나왔다. 17분 뒤 추가골까지 나오자 도시 전체가 들썩거렸다. 사람들은 서로 껴안으며 기쁨을 만끽했다. 거리를 지나는 차량들은 경적 소리로 승리를 기원했다. 마치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서울광장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풍경. 기적을 희망하는 데는 성별도 인종도 없었다. 노란 유니폼을 입은 이상 모두가 한마음이었다.

후반에도 바파나 바파나의 공세가 이어졌다. 전반 초반 한 명이 퇴장 당해 수적 열세인 프랑스를 거세게 몰아치며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하지만 승리에 대한 부담이 너무 컸을까. 슈팅은 조금씩 빗나갔고 아쉬운 시간은 계속 흘렀다. 응원하던 팬들의 입에서도 탄식이 이어졌다. 결국 경기는 2-1로 끝났다. 바파나 바파나는 팬들에게 월드컵 사상 첫 승리를 선물했지만 16강 티켓은 손에 얻지 못했다.

경기가 끝난 뒤 팬들은 아쉬움에 한동안 멍하니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이윽고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나왔다. 팬들은 서로 악수를 하며 승리를 자축했다. 잠깐 잠잠했던 부부젤라 소리도 다시 힘을 얻었다. 타에포 에밀랑가 씨(45)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는 “비록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지만 바파나 바파나의 투혼에 감동했다. 오늘 얻은 감동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울먹거렸다. 크리스티나 음펠라 씨(32·여)는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바파나 바파나의 승리는 남아공의 밝은 미래의 시작입니다.”

―더반에서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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