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전!월드컵]빅게임은 빅스타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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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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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2006… 월드컵 통해 떠오른 ‘태극 영웅들’

《축구 스타는 월드컵을 통해 명멸한다. 한국 축구 최고의 별들도 월드컵의 환희와 좌절 속에서 성장했다. 1954년 스위스에서 2010년 남아공까지 월드컵을 수놓은 태극전사들을 만나보자.》

○ 영욕을 온몸으로


고 홍덕영. 그의 이름 앞엔 항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한국 축구 사상 최초로 진출한 올림픽(1948년 런던)과 월드컵(1954년 스위스)의 수문장 홍덕영.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의 8강 진출을 거들었던 그는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때는 월드컵 사상 최다 실점(예선 2경기 16실점)의 불명예를 안았다. 생전 본보와 인터뷰에서 “빗물을 머금은 공이 볼링공 같았다. 헝가리전 당시 너무 힘들어 공만 잡으면 관중석으로 차냈다”고 회상했다. 고 홍덕영은 한국 월드컵 역사의 개척자였다.

○ 사상 첫 골의 주인공

1986년 멕시코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온 국민의 관심은 차범근-최순호의 CC포에 집중됐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이름을 날리던 ‘차붐’ 차범근과 간판스타 최순호의 발끝에서 첫 골이 나올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한국의 월드컵 첫 골은 박창선의 몫이었다. 박창선은 세계 최강 아르헨티나에 0-3으로 뒤지던 후반 28분 벼락같은 중거리 슛을 터뜨려 해외 언론으로부터 ‘한국의 마라도나’라는 칭호를 얻었다. 한국이 낳은 최초의 월드컵 스타였던 셈이다.

○ 국민 드라마의 완성

서정원은 1994년 미국 월드컵 최종 예선 북한과의 마지막 경기가 끝난 뒤 탈락을 예견하고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이라크의 오만 자파르가 일본과의 경기에서 종료 직전 골망을 흔들며 한국은 극적으로 미국행 티켓을 따냈다. 서정원은 예선에서의 극적 승부를 본선에까지 이어간 진정한 월드컵의 사나이다. 스페인과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1-2로 뒤지던 후반 추가시간에 홍명보의 송곳 패스를 받아 오른쪽 골문으로 차 넣으며 국민 드라마를 완성했다.

○ 영원한 리베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부터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까지…. 월드컵 무대의 중심에는 그가 있었다. 황선홍, 이운재와 함께 한국 월드컵사의 도약기를 책임지며 최다 출전(4회)을 기록했다. 1994년 미국에서 중거리포 2방은 강팀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완성한 후 환하게 웃던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는 월드컵이 탄생시킨 한국 최고의 스타다.

○ 히딩크의 아이들, 허정무호의 대들보


2002년 한일 월드컵 한국과 이탈리아의 16강전에서 나온 안정환의 연장 골든골은 국제축구연맹(FIFA)이 선정한 ‘가장 기억할 만한 월드컵 경기’로 꼽힐 만큼 강한 임팩트가 있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10대 골’에 선정된 포르투갈전 박지성의 환상적인 논스톱 슛도 한국 축구가 톱클래스로 성장하는 데 발판이 됐다. 2002년 히딩크의 아이들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을 이끌 대들보로 허정무호를 이끌고 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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