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남아공-남장현기자의 오스트리아리포트] ‘외유내강’ 파이터 김형일

  • 스포츠동아
  • 입력 2010년 6월 3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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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월드컵 23명 최종 엔트리가 결정됐지만 모두가 똑같은 입장은 아니다. 결국 영예의 주인공은 그라운드에 나설 수 있는 11명과 교체 투입될 3명에 불과하다.

같은 목표를 향해 경쟁하고 달리면서 같은 노력을 기울였고, 함께 같은 양의 땀을 흘렸는데도 정작 기회가 없다는 사실에 서운할 수 있을 터. 하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 김형일(26·포항) 얘기다.

경기 당일 허정무 감독의 판단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김형일은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동일한 포지션에 쟁쟁한 경쟁자들이 많다. 더욱이 주전들도 붙박이와 다름없다. 김형일이 뛸 수 있는 센터백에는 이정수(가시마)-조용형(제주) 라인이 일찌감치 자리매김한데다 허정무호에서 오랜 시간을 뛰었던 강민수(수원)까지 있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부상 등 정말 큰 돌발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이러한 상황은 바뀌지 않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김형일은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을 하고 있고, 스스로의 처지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돌린다.

“처음 예비 엔트리 30명 명단에 들어 파주NFC에 소집됐을 때는 오스트리아 전훈까지 가서 ‘아,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을 갖고 돌아오는 게 목표였죠.”

삶의 자세가 버팀목이다. 나이에 비해 유독 힘겨운 시간을 보냈던 김형일은 매 순간을 즐길 줄 알고 항상 뭔가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작년 소속 팀 포항과 함께 일본 도쿄 원정을 떠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를 평정했을 때,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지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억하며 펑펑 눈물을 쏟았던 그였다.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에 합류했을 때 틈틈이 외박이 주어지면 점심에는 여자 친구를 위해, 저녁에는 홀어머니가 살고 있는 인천 집으로 돌아가 아까운 시간을 쪼개 쓰는 마음씨 고운 남자가 김형일이다.

하지만 필드에서는 사나운 맹수로 돌변한다.

강한 지구력과 투쟁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 허 감독도 이러한 ‘파이터 정신’을 높이 산다. “팀에 한 명쯤은 강하게 물고 늘어질 수 있는 수비수가 필요한데, 김형일이 적합한 것 같다”고 허 감독은 말한 바 있다.

스페인과 평가전 이전까지 김형일의 A매치 기록은 2회 출전. 모두 자신의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게 한 허정무호에서 올린 기록이다. 앞으로 횟수가 늘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적어도 월드컵 기간 중에서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노래하는 김형일이기에 내일은 밝다고 할 수 있다.

노이슈티프트(오스트리아)|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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