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cup D-30]그가 서면, 한국 축구가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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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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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수문장 이운재 최근 부진 털고 월드컵 열의 다져

그가 고개를 숙이면 흔들린다. 당당했던 모습을 되찾아야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최후방에 있지만 그가 제대로 서야 한국 축구도 제대로 선다. 줄곧 그랬다.

축구대표팀 수문장 이운재(37·수원 삼성) 얘기다. 남아공 월드컵이 30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이운재는 요즘 말을 아낀다. 주위에서 ‘한물 갔다’는 평가가 쏟아져 자존심이 상했지만 묵묵히 땀을 흘린다. 그를 지켜보는 측근들은 “월드컵 본선에서 뭔가 보여주겠다는 열의에 차 있다”고 말한다.

이운재는 이번이 4번째 월드컵 출전이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 출전했고 2002년부터 3회 연속이다. 그만큼 각오가 남다르다. 대표팀 선수들도 이운재에 대한 기대가 크다. 항상 맏형처럼 뒤에서 버텨주고 있기 때문에 수비와 미드필드, 공격 라인이 힘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운재는 이번 월드컵에서 그 어떤 대회보다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K리그에서 소속 팀의 부진과 함께 자신에 대한 평가도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운재는 올 시즌 K리그에서 대량 실점을 하고 있다. 9경기에서 18실점, 경기당 2실점으로 지난해(경기당 1실점·26경기 26실점)보다 곱절이 됐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자 일부에서는 “이운재로 월드컵을 치러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나왔다.

사실 이운재의 부진 원인은 수원 팀 전체의 전력 하락 탓이 크다. 노장인 탓에 신체적인 능력이 다소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전반적인 경기 운영 능력에서는 크게 변한 게 없다. 전문가들은 수원의 수비와 공격 라인이 제 몫을 못하기 때문에 그 부담이 이운재에게 고스란히 옮겨와 나타난 현상이라고 말한다. 물론 일부 경기에서 어이없는 실수를 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전체를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이운재는 “팀 성적이 좋지 않은 것에는 내 책임이 크다. 그것을 부인할 생각은 전혀 없다. 또 일부에서 비판이 있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런 비판을 자극제로 삼아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한다.

허정무 감독이 발표한 예비 엔트리 30명 중 골키퍼가 3명이다. 이는 최종 엔트리 골키퍼 3명을 처음부터 확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허 감독은 “상황을 지켜보고 최종 결정하겠다”고 했지만 사실상 이운재를 주전 골키퍼로 낙점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동안 A매치에서 이운재가 해온 역할을 인정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이운재는 이런 허 감독의 결정에 어떤 속내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소속팀 성적이 부진한데 혼자서 혜택받는 것처럼 보이는 게 싫었다. 또 실점률이 높은 것은 자신의 책임이기 때문에 조용히 앞날은 준비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이운재는 2002년 홍명보가 했던 역할을 할 생각이다. 홍명보는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을 포함한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간의 가교 역할을 했다. 최고참으로서 사실상 주전이 확정된 선수와 벤치를 지키는 선수들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알력도 미리 차단했다. 후배들이 힘들어할 땐 큰형처럼 도닥였고 잘할 땐 덩달아 기뻐하며 좋아했다. 이운재는 주장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뒤에서 2002년 홍명보가 했던 것처럼 팀을 하나로 모으는 역할을 할 계획이다.

이운재는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코치 홍명보와 ‘쾰른 결의’로 팀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역할을 했다. 당시 본선을 앞두고 치러진 노르웨이와의 평가전에서 0-0으로 비기고 가나에 1-3으로 져 팀 분위기는 크게 가라앉았다. 토고와 1차전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홍 코치와 함께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감을 가져라. 기를 살려라. 우리는 할 수 있다”고 후배들을 다독였다. 한국은 토고를 2-1로 잡았다. 이 승리가 이운재만의 몫은 아니지만 그가 큰 역할을 했다. 월드컵 원정 첫 승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 가운데 하나였다.

“남은 기간 체력과 기량을 키워 후배들과 팬들을 절대 실망시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대표팀 수문장의 각오는 그 어느 때보다 결의에 차 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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