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강할수록 정면승부… 올해는 더 빠른 공 던지고 싶어”

  • 동아일보

《“몸이 근질근질해요. 매일 마운드에 오르는 게 쉬는 것보다 편하더라고요.”

박빙의 경기에서 승리에 쐐기를 박는 마무리 투수. 그는 숨 막히는 순간을 즐긴다.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의 수호신 임창용(34·사진) 얘기다. 임창용은 15일 히로시마와의 방문경기에서 2-1로 앞선 9회 등판해 공 13개로 3명을 범타 처리하며 4세이브째를 올렸다.》

■ 시즌 4세이브 질주… 日 야쿠르트 수호신 임창용

2일 요코하마전 이후 13일 만의 세이브. 그는 주니치 이와세 히토키(6세이브), 한신 후지카와 규지(5세이브)에 이어 센트럴리그 세이브 부문 3위다. 임창용을 12일 야쿠르트 홈구장인 도쿄 메이지진구 구장 클럽하우스에서 만났다. 곱상한 얼굴에 턱수염이 자라 있었다. 조금 피곤해 보였다. 그는 “한참을 마운드에 오르지 못해 오히려 컨디션을 조절하기가 힘들다”며 웃었다.

○ 일본에서 ‘초심’을 찾다

임창용은 주무기인 직구를 더 강하게 만들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그의 직구는 시속 160km까지 나왔다. 올 시즌에도 지난달 30일 주니치전에서 155km가 찍혔다.

“한국에서 157km를 던진 적이 있지만 일본에서 몸이 더 좋아진 것 같아요. 올해는 더 빠른 공을 던지고 싶죠. 상대를 강하게 압박할 수 있으니까요.”

임창용은 그동안 여름에 약했다. 지난해 20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을 하던 중 여름에 고전했다. 체력이 떨어진 탓이다. 그는 “겨울훈련 때부터 지금까지 웨이트트레이닝을 계속하면서 체력 유지에 신경을 쓰고 있다”며 “여름에도 힘 있는 공을 던지겠다”고 말했다.

임창용의 강속구가 살아난 건 초심을 되찾은 덕분이다. 그는 공 한 개를 던질 때마다 이를 악물고 던졌다. SK 김성근 감독의 좌우명 ‘일구이무(一球二無)’처럼 그는 ‘공 하나에 두 번째란 없다’는 심정으로 공을 던졌다. “강한 타자라고 피하면 계속 밀립니다. 만만하게 생각하거든요. 칠 테면 쳐보라는 식으로 정면 승부를 했죠. 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공을 던지다 보니 저도 모르게 승부욕이 살아났어요.”

○ 매너리즘 대신 자신감을 얻다

임창용은 삼성 시절인 2007년 5승 7패 평균자책 4.90에 머물렀다. 국내에서 13년간 104승 66패 168세이브에 평균자책 3.25를 거둔 것에 비하면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표였다. “매너리즘에 빠졌던 것 같아요. 늘 익숙한 선수들과 상대하면서 나도 모르게 의욕이 떨어졌죠.”

그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일본을 선택했다. 2008년 연봉 3000만 엔에 야쿠르트와 계약했다. 삼성 시절 연봉 5억 원에서 40% 삭감을 감수했다. 그리고 그해 1승 5패 33세이브, 지난해에는 5승 4패 28세이브를 기록했다. 완벽한 부활이었다.

그래서일까. 요즘 임창용의 투구 모습은 역동적이다. 부드럽게 몸을 비틀었다가 한순간 강하게 공을 던지는 모습은 자신감이 넘친다. 임창용은 올해 볼 배합도 바꾸고 있다. 직구로 스트라이크를 잡으면 결정구는 슬라이더로 던지는 등 투구 패턴의 변화를 주고 있다. 주무기인 직구를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 ML 진출 포기, 日서 최고가 목표

임창용의 올해 목표는 39세이브를 채워 일본 진출 3년 만에 100세이브를 달성하는 것이다. 이유를 묻자 “두 자리 숫자보다 세 자리가 좋지 않으냐”는 답이 돌아왔다.

“팀 타선이 지난해에 비해 좋아 마무리할 기회가 많아질 것 같아요. 100세이브를 채우고 저팬시리즈 우승까지 책임지고 싶습니다.”

임창용은 올 시즌을 앞두고 메이저리그의 한 구단에서 영입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이유는 두 가지. 자신에게 기회를 준 일본에서 최고 마무리로 인정받고 싶기 때문이다. 또 내년이면 서른다섯 살이어서 새로운 무대에 도전하기는 무리라는 생각이다.

○ 은퇴 후 꿈은 국내 프로야구 감독

임창용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아직 결정된 게 없다”고 말했다. 매 경기 최선을 다하는 게 우선이라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그의 에이전트 박유현 대표는 “미래를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다”고 전했다. 임창용은 일본에서 현역 생활을 마치면 일본이나 미국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은 뒤 한국에서 프로야구 사령탑이 되려는 것이다.

“이젠 일본이 친숙해졌어요. 일본어가 유창하지 않지만 생활하기엔 지장이 없죠. 집에서 혼자 장기 게임을 하다 보면 야구장에서의 긴장감이 풀리죠.”

이날 진구 구장 주변에는 벚꽃이 만개했다. 길가에 임창용의 대형 사진이 펄럭였다. 임창용 사진 옆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마음의 강직함이 최고의 무기가 된다.’

도쿄=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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