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 강한 자, 최후에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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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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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를 알면 농구가 보인다’ 디펜스의 모든 것

#1. 2005년 6월 2일 미국프로농구 플레이오프 서부지구 디비전시리즈가 열린 피닉스의 아메리카 웨스트 아레나. 홈팀 피닉스 선스는 정규시즌에서 최고 승률(62승 20패)을 올렸지만 이날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패하며 시리즈 전적 1승 4패로 짐을 쌌다. 정규시즌에서 피닉스의 평균 득점(110.4점)과 실점(103.3점)은 모두 리그 최다. 많이 넣고 많이 주는 팀인 피닉스는 화끈한 ‘런 앤드 건’(속공을 주무기로 하는 극단적인 공격 위주 농구)으로 시즌 내내 화제가 됐다. 그러나 리그 최소 실점(88.4점)팀 스퍼스의 강력한 수비에는 그 화려함이 빛을 잃었다.

#2. 한국프로농구 2003∼2004시즌 최고 인기 팀은 오리온스였다. ‘총알 가드’ 김승현을 앞세운 빠른 공격 농구로 리그 평균 득점 1위(90.7점)를 기록하며 팬들을 즐겁게 했다. 문제는 10개 팀 가운데 끝에서 3번째인 허약한 수비. 결국 6강 플레이오프에서 LG에 허무하게 무릎을 꿇었다. 이 시즌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한 팀은 리그 최소 실점 1, 2위 팀인 TG와 KCC였다.》

○ 수비엔 슬럼프가 없다

‘농구의 꽃’은 무엇일까. 빠른 속공? 시원한 3점 슛? 호쾌한 덩크 슛? 모두 아니다. 전문가들이 꼽는 농구의 꽃은 수비다. ‘공격은 티켓 파는 데 도움을 주지만 수비는 우승 트로피 드는 데 도움을 준다’는 말은 유명하다. 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약속된 수비 패턴이 경기에서 딱 들어맞을 때 최고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표현했다.

공격은 컨디션 따라 춤을 추지만
조직력 갖춘 수비는 슬럼프 없어
승부처선 호수비 하나가 승패 갈라


농구에서 수비 비중이 큰 이유는 우선 좁은 코트에서 공격과 수비 전환 속도가 빠르기 때문. SBS스포츠 조성원 해설위원은 “농구는 1초 만에 공수가 바뀌는 스포츠”라며 “그만큼 조직적이고 꾸준한 압박 수비로 상대 체력 소모를 이끄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규시즌 최우수선수로 뽑힌 함지훈(모비스)은 “농구에서 속공을 허용하면 곧바로 실점이다. 악착같은 수비로 상대 속공을 어떻게 막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린다”고 강조했다.

수비는 공격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수비 전술을 가다듬고 기본 스텝 등을 익히는 과정에서 공격 조직력은 배가 된다. 1990년대 초반 시카고 불스의 황금기를 이끈 필 잭슨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불스의 상징인 ‘트라이앵글 오펜스’는 사실 수비 전술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 전력의 핵심은 상대를 질식시키는 수비 조직력에 있죠.” KT 전창진 감독은 “수비엔 슬럼프가 없다. 특히 4쿼터 등 승부처에선 결국 좋은 수비 하나로 승패가 갈린다”고 설명했다.

○ 4강 4색 수비

프로농구 원년(1997년)에 95.5점을 찍은 전체 평균 득점은 시즌이 거듭될수록 낮아져 이번 시즌 처음으로 70점대(78.7점)로 떨어졌다. 미국도 마찬가지. 1990년대 초반 100점대 중반에 이르던 평균 득점은 최근 90점대 중반까지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수비의 상향 평준화를 이유로 꼽는다.

실제 이번 시즌 4강 플레이오프에 오른 4팀은 공통적으로 수비가 좋았다. 모비스는 10개 팀 가운데 정규 시즌 최소 실점(73.9점)을 기록했고 동부와 KT, KCC는 각각 2, 3, 5위에 올랐다. 4강 플레이오프는 수비에서 명암이 갈렸다. 정규시즌 챔피언 모비스는 동부의 장점인 포워드 라인을 탄탄한 수비 조직력으로 틀어막고 챔피언결정전에 올랐다. 반면 정규시즌 2위 KT는 가장 큰 장점이었던 앞선 수비 라인이 전태풍 등 KCC의 가드진에 무너지며 챔피언결정전 티켓을 내줬다.

KCC를 상대로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1승을 먼저 챙긴 모비스는 내외곽 수비 모두 견고하다는 평가다. 키 200cm가 넘는 선수가 한 명도 없지만 강한 체력과 톱니바퀴 같은 조직력으로 이를 극복했다. 올 시즌 모비스를 상대로 상대 팀들이 성공시킨 3점 슛은 경기당 4.3개에 불과하다. 체육관에 ‘디펜스, 리바운드’란 문구를 걸어 놓은 ‘여우’ 유재학 감독의 변칙 수비 역시 모비스의 강점이다. 전창진 감독의 KT는 외곽 수비가 특히 좋다. 앞선 선수들이 상대를 강하게 압박해 쉬운 득점 찬스를 거의 허용하지 않는다. 가드와 포워드 라인의 빠른 스피드로 상대 공격을 차단하다가 필요할 때는 프로농구 최고의 덩치 나이젤 딕슨(205cm, 154kg)을 투입하는 변칙 수비 역시 효과를 봤다.

KCC와 동부 수비의 공통점은 높이. KCC는 하승진, 테렌스 레더 등 정통 센터에 무게 중심을 두고 수비를 짠다. 동부는 포워드 라인이 높이의 중심이다. 김주성-마퀸 챈들러-윤호영 등 키가 크고 발도 빠른 포워드 라인이 정신없이 자리를 바꿔 가며 견고한 수비 라인을 구축한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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