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문 눈물의 사부곡 “아…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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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5일 0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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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투병 부친 끝내 하늘로…‘FA’ 최기문 “풀타임 활약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아, 아버지!’ 췌장암으로 투병하다 4일 세상을 떠난 FA포수 최기문의 아버지는 임종 직전에도 야구선수인 아들을 걱정하며 “송구 동작을 바꿔보라” 는 유언을 남겻다. [스포츠동아 DB]
‘아, 아버지!’ 췌장암으로 투병하다 4일 세상을 떠난 FA포수 최기문의 아버지는 임종 직전에도 야구선수인 아들을 걱정하며 “송구 동작을 바꿔보라” 는 유언을 남겻다. [스포츠동아 DB]
FA 포수 최기문(36)의 눈은 충혈돼 있었다. “요 며칠 밤 한숨도 못 잤다”고 했다. 4일 아침 그 고통은 정점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렇게 아버지 최송환 씨(67)의 임종을 결국 지켰다.

빈소가 마련된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4일 오후 찾았다. 기자가 첫 번째 조문객이었다. 큰아들인 상주는 애써 담담한 얼굴을 유지하려 했지만 마음 한구석의 허탈감까지 감추진 못했다.

그토록 간절했던 집념의 FA. 원래 2008시즌 직후 자격을 얻었지만 ‘제대로 된’ 대우를 받기 위해 1년을 더 인내했다. 그러나 정작 FA 우선 협상기간이 왔는데도 아직까지 원 소속구단 롯데와 협상다운 협상 한 번 해보지 못했다. 롯데가 성의가 없어서가 아니라 최기문이 겨를이 없어서였다. 야구보다, FA보다 소중한 무엇, 그것은 가족애(愛)였다.

아버지 최 씨는 프로야구 선수인 아들을 자랑스러워했다. 자식이 야구를 희망하면 반대부터 하고 보는 여느 집과 달랐다. 둘째 아들도 스포츠 강사로 일하고 있다. 야구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아들이 1996년 입단한 OB에서 1998년 10월 롯데로 트레이드되자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됐다. 장남을 부산에 떠나보낸 뒤 걱정되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롯데 11년. 그 기간 아버지 최 씨는 TV로 중계되는 롯데경기는 거의 빠뜨리지 않았다. 2005년 이후 세월의 흐름에 맞춰 서서히 아들이 주전에서 후보로 옮겨가 벤치만 지키고 있는데도 혹시 나올까봐 끝까지 봤다.

그런 아버지에게 죄송해서 아들은 언젠가 롯데에 트레이드를 요청하기도 했었다. FA를 선언하면서 첫 번째 조건으로 돈도, 기간도 아닌 “나를 필요로 하는 팀”이라고 말한 것도 그런 한(恨)이 배어 있어서였다. 그러나 FA 최기문이 풀타임 주전의 꿈을 이뤄도 이제 더 이상 아버지는 봐줄 수 없게 됐다. 그렇더라도 아버지의 유언을 기억하면 ‘완벽한 포수’로 거듭나는 목적은 필생의 당위이자 책임이 됐다. “송구 동작을 바꿔봐라.” 아버지가 임종 직전 사경을 헤매다 남긴 유언이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도 아버지는 아들의 약점으로 지적받는 ‘어깨’를 걱정했나보다. 아버지의 췌장암 말기 증상이 확인된 시점은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준PO) 직후였다. 목이 아파서 병원에 들렀다 암이 발견됐고,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상태였다. 그 지경이 됐는데 괜찮을 리가 있을까. 준PO를 치르는 아들을 위해 견뎠을 것이다. 삶의 끝자락까지 포수 최기문의 팬이었던 아버지 최 씨는 6일 경기도 광주시 분당 ‘휴’ 추모공원에 잠든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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