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승마 - 캠핑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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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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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양평군 산음자연휴양림 이색체험
말에 올랐다. 고삐를 당겼다,말이 반항한다… 어르고 달래 우린 하나가 된다,그리고…

캠핑만 하기에는 뭔가 아쉽다. 캠핑장에 가는 산길을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아닌 말을 타고 간다면 어떨까. 가을이 깊어가는 산길을 따라 오르막과 내리막, 풀밭, 개울 등을 경쾌하게 내달리다 보면 어느새 자연에 푹 파묻히게 된다. 사진 제공 이정식
캠핑만 하기에는 뭔가 아쉽다. 캠핑장에 가는 산길을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아닌 말을 타고 간다면 어떨까. 가을이 깊어가는 산길을 따라 오르막과 내리막, 풀밭, 개울 등을 경쾌하게 내달리다 보면 어느새 자연에 푹 파묻히게 된다. 사진 제공 이정식
《첫 대면에서 브라운은 몹시도 시큰둥했다. 재갈을 물리고 마구를 얹을 때까지 곁눈질로 흘끔흘끔 눈치만 보던 녀석은 내가 올라타자 학교에 가기 싫은 초등학생처럼 마지못해 미적미적 걷는다. 그나마 길섶에 웃자란 산딸기 줄기를 훑어먹느라 제멋대로 걸음을 멈추기 일쑤. 고삐를 당겨 먹는 걸 제지하면 머리를 휘저으며 어깃장을 놓았다. 은근히 부아가 나서 감정을 실어 고삐를 당기자 나를 털어내 버리겠다는 듯 앞발로 허공을 긁는다.》

노골적인 반항…. 말은 고삐를 통해 전달되는 미묘한 리듬과 압박, 그리고 자신의 몸을 조이는 다리 힘을 통해 등에 태운 사람의 승마 내공을 단번에 알아내 걸맞은 대접을 한다. 열 살짜리 몽골말 브라운은 내게 철저히 초보 대접을 하고 있었다.

작전을 바꿨다. 목덜미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비장의 무기로 준비한 과자를 주자 축축하고 기다란 혀로 날름 감아 들인다. 한동안 정성스레 쓰다듬고 과자를 먹이며 어르고 달랜 뒤에야 브라운은 비로소 마음을 열고 속보로 달리기 시작했다.

돌밭 흙길 개울… 자연속으로

경기 양평군 단월면 산음자연휴양림에 자리 잡은 산음산악승마장(cafe.naver.com/byck56)을 찾은 것은 산악승마에 캠핑을 접목해 보기 위해서였다. 산악승마는 말 그대로 산에서 말을 타는 것. 모래가 깔린 트랙을 빙글빙글 도는 일반 승마와는 달리 산길을 따라 오르막과 내리막, 돌밭, 풀밭, 흙길, 개울 등 자연지형을 극복하는 거친 승마다.

산악승마에 활용되는 말은 서러브레드 같은 키 크고 늘씬한 경주마가 아니라 작고 다부진 체격의 몽골말이다. 먼 옛날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던 칭기즈칸의 기마부대를 이뤘던 바로 그 말이다. 털이 길고 다리가 굵은 몽골말은 자동차로 치면 오프로드용 4륜 구동이다. 돌길이건 자갈길이건 거침이 없고 특히 언덕을 차고 오르는 파워가 강력하다. 홈그라운드인 이곳 산길에서 산전수전 어지간히 겪은 브라운은 가을이 깊어가는 산악의 험로를 속보로 경쾌하게 내달렸다.

산음휴양림은 산악자전거나 오프로드 바이크를 이용해 가끔 찾던 곳이지만 이번처럼 심장과 체온이 있는 생명체와 함께한 것은 처음. 자전거나 모터사이클 등 금속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온기, 그리고 살아있는 것 사이의 애틋한 교감이 있었다.

엔진은 기름을 넣어야 달리지만 말의 에너지원은 산길을 따라 지천으로 자라고 있는 산야초다. 자동차로 치자면 공짜 주유소가 널려있는 셈이다. 말은 배고프면 풀을 뜯어 배를 채우고 목마르면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로 목을 축였다. 풀을 먹은 뒤엔 엔진 배기가스 대신 몇 덩어리의 말똥을 생산했지만 말똥은 그대로 좋은 거름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갈 터였다.

해발 700m서 만나는 일몰

캠핑장에서 지친 몸을 달래는 동안 말은 텐트 주변의 풀을 뜯는다. 풀밭이 말에게는 공짜 주유소인 셈이다.
캠핑장에서 지친 몸을 달래는 동안 말은 텐트 주변의 풀을 뜯는다. 풀밭이 말에게는 공짜 주유소인 셈이다.
우리는 북서쪽으로 조망이 트인 해발 700m의 고지에서 일몰을 맞았다. 용문산과 화악산. 멀리 굽이치는 한북정맥의 스카이라인에 걸린 붉은 노을의 장관을 말과 함께 정신없이 바라보다 텐트를 쳤다.

말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기가 미안해 침낭, 매트리스, 텐트 등 야영 장비를 가벼운 고산등반용으로 준비하고 식량도 찐 고구마 2개, 찐 밤 10알, 사과 한 알 등 최소한으로 준비한 산악승마 야영은 소박하고 깔끔했다.

브라운은 내가 식사를 하는 동안 텐트 주변의 풀을 몽땅 먹어치워 어른 무릎 높이의 풀이 우거졌던 곳을 마치 잔디 깎는 기계로 깎아놓은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

텐트 안에 드러누우니 으스름 달빛에 말 그림자가 텐트 벽에 어른어른 비쳐 독특한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브라운이 우둑우둑 풀을 씹어 먹는 소리는 내가 잠들 때까지 더 없이 편안한 자장가가 되어줬다.

송철웅 익스트림스포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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