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의 가을이야기] 투수 이강철 ‘내 생애 최고의 공’

  • Array
  • 입력 2009년 10월 24일 07시 30분


이강철. 스포츠동아 DB
이강철. 스포츠동아 DB
“내 생애 가장 자신있게 던진 공 하나였죠.” 이강철(43·KIA·사진) 코치가 회상합니다.

1996년 해태와 현대의 한국시리즈 6차전. 해태는 3승2패로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3-1로 앞선 상황에서 위기가 찾아옵니다. 4회말 2사 만루 풀카운트. 마운드에 선 해태 선발 이강철은 차분하게 되뇌어 봅니다. ‘여기서 뭘, 어떻게 던지느냐에 오늘의 명운이 달려있어.’ 그리고 회심의 커브를 던집니다. 이강철의 손을 떠나 날아간 공에 현대 대타 박재홍은 헛방망이질을 합니다. 삼진. 그 순간 이강철도 알고 해태도 알았답니다. 이번 시리즈의 승리 팀은 타이거즈라는 사실을요. “유독 매 장면 기억에 남는 한국시리즈였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성취감을 느낀 순간이었어요.”

3차전에서 5-0 완봉승을 이끌었던 이강철입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흐름을 가져왔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4차전에서 현대 정명원이 ‘노히트노런’이라는 뜨거운 맞불을 놓습니다. 해태 선수들은 그날 밤 단체로 술을 마시며 불길한 예감을 달래야 했습니다. 결국 잠실에서 2연승으로 끝내게 될 줄 미처 모르고 말입니다. 이강철은 5차전에서 공 하나로 세이브를 따낸 뒤 바로 다음날 선발 등판하는 투혼까지 발휘했습니다. 그 해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는 당연히 그의 차지였고요.

덕분에 인생의 새 장도 열렸습니다. 아내 윤지혜(38) 씨를 만나게 됐으니까요. 윤 씨는 한국시리즈가 열리기 전, 맞선 자리를 제안 받았습니다. 상대는 바로 ‘해태 투수 이강철’. 운동하는 사람? 왠지 우락부락하고 거칠 것만 같았습니다. 싫다고 대번에 잘랐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TV에서, 한국시리즈 MVP 자격으로 출연한 이강철을 보게 됩니다. 예상과는 달리 순한 말투와 얌전한 외모. 사람도 무척 착해 보입니다. 그렇게 둘은 만났고, 딸 가은(10) 양과 오순도순 살게 됐습니다.

13년이 지났습니다. 이강철은 이제 영욕을 함께 했던 타이거즈의 코치로 한국시리즈 무대에 섰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당장이라도 다시 마운드에 올라 던지고 싶은 마음도 들어요. 벤치에서 보고 있는 게 더 긴장되거든요. 옛날 생각도 많이 나고요.” 그리고 덧붙입니다. “경험은 창조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아무도 진짜 느낌을 알 수 없죠. 코치가 되어 처음으로 우승하는 기분도 그럴 것 같네요.” 하지만 그 순간을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얼굴이 붉게 상기됩니다. 왕년의 에이스 이강철이 꿈꾸던 KIA의 한국시리즈 우승. 그것이 마침내 현실화된다면 아마도 또다른 차원일 겁니다.

잠실|스포츠부 기자 yeb@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