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향남의 무한도전 “트리플A는 정복”

  • 입력 2009년 8월 27일 02시 54분


■ 다저스 마이너리그서 구슬땀… 내달 빅리그 진입 눈앞에

《1994년 박찬호(36·필라델피아)가 메이저리거의 꿈을 안고 태평양을 건넌 뒤 올해까지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한국 선수는 모두 51명이다. 그중 최향남(38)의 존재는 특별하다. 그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30대 중반에야 빅리그를 향한 도전을 시작했다. 이제 그의 간절한 꿈이 손에 잡히려고 한다. ‘운명의 날’은 9월 1일(현지 시간). 이날 메이저리그 각 구단은 등록 선수 명단을 25명에서 40명으로 늘린다.》

올 9승2패, 평균 자책 2.47
성적 좋아 코치도 “승격 건의”

LA 다저스 산하 트리플A 앨버커키 아이소토프스에서 뛰고 있는 최향남은 26일 통화에서 “그날만 바라보고 있다. 이번에 메이저리그에 올라가도 그게 끝이 아니다. 내년에 더 큰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적은 메이저리그급

앨버커키가 속해 있는 퍼시픽코스트리그는 전통적으로 방망이가 세다. 26일 현재 최향남의 성적은 9승 2패에 평균자책 2.47. 3점대 평균자책이면 수준급이라는 소리를 듣는 이 리그에서 5월 중순 팀에 합류한 그가 거둔 성적은 경이적이다. 최향남은 “이 정도면 마이너리그는 정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평했다. 짐 슬레이튼 투수 코치는 그에게 ‘메이저리그 승격을 건의하겠다’고 했다. 동료 선수들은 모두 ‘최향남이 올라갈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래도 최향남은 “며칠 안 남은 만큼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주변 정황 역시 희망적이다. 팀의 주축 투수가 된 최향남은 요즘 이기는 경기에만 등판한다. 코칭스태프도 휴식일을 보장해 주는 등 배려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다만 다저스가 강력한 투수진을 바탕으로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선두를 달리는 게 걸림돌이 될 수 있다.

○ 악조건에서도 발전하는 야구

요즘 최향남의 몸 상태는 말이 아니다. 지난해 말 도미니카 윈터리그에서 뛸 때 물린 벌레의 독이 퍼져 온몸에 두드러기가 생겼다. 만성 두통에 구토 증세도 있다. 올 초에는 입단 테스트를 받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지금까지 버텨오고 있다. 88kg이었던 몸무게는 83kg으로 줄었다. 최향남은 “머리가 안 아프고, 속이 괜찮고, 토하지 않는 게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의 유일한 낙은 앨버커키 한식당에서 가끔 맛보는 김치찌개다.

이런 악조건에서 그가 최상의 구위를 뽐낼 수 있는 건 투구 기술이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향남은 “밸런스가 좋으면 힘들이지 않고 100%의 투구를 할 수 있다. 올해는 계속 그런 확신을 갖고 던지고 있다. 그게 안 되면 지금처럼 꾸준히 성적이 좋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향남은 삶의 모든 초점을 야구에 맞췄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도 닦는 생활’이다. 원정지에서 다른 선수들이 쇼핑을 다니고 친구를 만나는 동안 그는 조용히 호텔에서 휴식을 취한다.

○ “왜 하느냐고요? 좋아서 하지요”

최향남은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해 “전혀 후회가 없다”고 했다. 그는 “메이저리그라는 꿈과 희망이 있었기에 아직까지 야구를 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잘 안 풀린 인생인 것 같지만 어찌 보면 행운이 따랐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셈”이라며 웃었다.

동료 선수들이나 친분 있는 사람들로부터 “왜 그렇게 힘들게 사느냐”는 말을 들을 때면 힘이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경기장에서 만난 많은 교포들은 “당신이 자랑스럽다”며 힘을 북돋워준다. 최향남은 “우선 나 자신을 위해 잘해야겠지만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라고 했다. ‘고독한 도전자’ 최향남의 야구 인생은 과연 해피 엔딩 드라마가 될 수 있을까.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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