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 되고 싶은 남자 “다시 지옥으로 갑니다”

  • 입력 2009년 8월 24일 09시 41분


상대 선수의 도복을 붙잡고 안간힘을 쓰던 베이징올림픽남자유도60kg급 금메달리스트 최민호(29·한국마사회·사진). 1분간의 짧은 휴식시간이 되자 매트 옆으로 살짝 주저앉았다. 숨을 몰아쉴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듯, 최민호는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훈련을 마친 최민호가 체중을 쟀다. 62.3kg. 대회를 5일 앞둔 상황에서 계획대로였다.

정훈 감독은 “나도 운동을 해봤지만, 선수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훈련을 시켰다”면서 “특히, (최)민호가 정신을 차리고 잘 따라와 줘서 고맙다”고 했다.

21일, 태릉선수촌 필승관. 출국을 이틀 앞둔 유도대표팀의 마무리 훈련풍경이었다. 26일부터 30일까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는 2009세계유도선수권대회가 열린다. 2003오사카대회 이후 2번째 세계선수권 정상에 도전하는 최민호를 만났다.

○방황? 안했다면 거짓말

태릉선수촌 필승관에는 레슬링(1층)과 복싱, 유도(이상 2층) 대표팀 훈련장이 있다. 선수촌 내에서도 필승 관은 ‘지옥’으로 소문이 나 있다.

4년간의 고된 훈련. 금메달이라는 목표 하나만을 바라보고 버티지만,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이 지옥을 떠나고 싶은 것이 사람심리다. 그래서 필승 관 종목에서 올림픽 2연패는 더 대단하다. 3종목을 통틀어 올림픽 2연패에 성공한 선수는 레슬링 심권호(37)뿐.

“방황이요? 솔직히 금메달 이후 흐트러지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요.” 베이징올림픽 전까지 최민호는 비운의 선수였다. 2000시드니올림픽 대표선발전. 최민호는 정부경(31)과 3차선발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아쉽게 출전티켓을 놓쳤다. 4년 뒤. 아테네올림픽 금메달후보 0순위였지만, 이번에는 체중조절에 실패하며 동메달에 머물렀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8년의 세월은 한 마디 말로 다 표현을 못해요. 금메달 하나만 바라보고 버텼거든요.”

하지만 목표를 이루자,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좋은 것만 보고 듣다가 다시 (태릉에) 들어오니, 내가 이 힘든 운동을 왜 해야 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체중감량에 대한 부담. 66kg급으로 한 체급을 올렸지만, 2008년 12월 일본 가노 컵 8강에서 한판패하며 힘의 차이를 절감했다. 슬럼프는 길어졌다.

○어머니의 채찍, 나를 깨웠다

결국 3월 대표선발전에서 60kg급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잡히지 않았다. 5월 러시아그랜드슬램. 최민호는 급기야 1회전 탈락의 수모를 겪었다.

“너는 너도 모르게 자만에 빠져 있는 거야!” 어머니의 따끔한 한 마디가 최민호를 깨웠다. 서울에서 대회가 있을 때면, 경북 김천에서 바리바리 먹을거리를 챙겨 오시던 어머니. 평생 자식만을 위해 살고, 자식에게 싫은 소리 한 마디 안 하던 바로 그 분의 충고였다. “그 때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며칠 간 잠도 못잘 정도였습니다.” 그 길로 핸드폰을 없앴다. 하지만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어머니와의 약속, 자신과의 약속이 다시 최민호를 매트로 이끌었다.

“올림픽 때는 대단했지만, 지금은 또 쥐죽은 듯 아무도 모르게 살고 있잖아요. 저는 반짝 스타가 아닌 영웅이 되고 싶습니다. 고비를 넘겨야 영웅이 되잖아요? 그래서 저도 고통을 참고 있습니다.” 최민호는 2012년 런던에서 한국유도사상 최초로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하고, 전설이 될 목표를 세웠다. 2009세계선수권은 그 전주곡이다.

태릉|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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