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출생…한국국적…北국가대표…‘축구 풍운아’ 정대세를 만나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8월 8일 02시 59분



남한에 ‘인민 루니’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재일동포 출신의 북한 축구대표팀 공격수 정대세 선수. 6일 일본 가와사키 프론탈레 연습구장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한 뒤 방아쇠를 당기는 포즈를 취했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남한에 ‘인민 루니’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재일동포 출신의 북한 축구대표팀 공격수 정대세 선수. 6일 일본 가와사키 프론탈레 연습구장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한 뒤 방아쇠를 당기는 포즈를 취했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북한 축구가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주공격수 정대세(25)는 전형적인 신세대 청년이었다. 재일동포 3세로 일본 프로팀 가와사키 프론탈레 소속인 정대세는 한국 국적이면서 북한 대표선수로 뛰는 ‘시대의 산물’이다. 6일 가와사키 연습구장에서 만난 그는 북한 축구 스타일부터 좋아하는 남북한 선수, 개인 취향까지 거침없이 말했다. 그는 북한 축구에 대해 “수비 위주여서 재미는 없지만 정신력이 대단하다”고 평했다.》
“北수비축구 재미없어도 정신력은 대단
월드컵 본선 갔으니 이제 유럽진출 꿈꿔
이근호-조원희-김남일과 친해 자주 연락
힙합 좋아하고 원더걸스 텔미 춤 따라해”

―꿈은 무엇인가.
“월드컵 본선에 가는 꿈은 이뤘고, 이젠 유럽 진출이 꿈이다. 박지성처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싶다.”
―북한의 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정된 후 박지성에게 고맙다고 했는데….
“한국과 이란 경기에서 박지성이 넣은 멋진 동점골은 우리에겐 월드컵 진출을 가능하게 해준 어시스트였다. 그때부터 완전히 박지성 팬이 됐다. 지고 있던 순간에 결정적인 골을 넣는 것을 보고 대단한 선수라고 느꼈다. TV로 경기를 보던 다른 조선 선수들도 소리 지르면서 기뻐했다.”
―북한을 월드컵 본선으로 이끈 소감은….
“역사적인 일을 실현하게 돼 기쁘다.”
―월드컵 진출 후 포상금은 받았나.
“없었다. 아쉽다. 난 조선대표로 뛰어도 볼런티어(무보수 자원봉사)다. 한국이나 일본 대표를 보면 솔직히 좀 부럽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불만도 없고 후회도 없다.”
그는 인터뷰 내내 북한을 ‘조선’ 또는 ‘우리’로 불렀다. 그러나 남북한에 대한 편견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과 경기할 때 특별한 느낌이 있나.
“한국 언론에 많이 주목을 받았으니 좋은 결과를 남겨 인기를 유지해야겠다는 생각도 있고, 부모님 나라와 경기를 하니 좀 독특한 느낌이 있다. 지면 안 된다, 부끄러운 경기를 해선 안 된다는 각오가 남다르다. 일단 경기가 시작되면 전력을 다해 이겨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인터뷰 전 팀 관계자는 “어린 선수라 민감하다”며 “남북 간, 한일 간 정치성 질문은 삼가 달라. 한국에선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대세는 일본에서 일본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북한에 대해 묻는 게 조심스러웠지만 오히려 그는 막힘이 없었다.
정대세 선수의 사인. 사인 왼쪽 위는 챔피언을 뜻하는 왕관이고 아래쪽 숫자 9는 소속팀에서의 등번호다. 오른쪽 아래 그림은 자신의 얼굴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정대세 선수의 사인. 사인 왼쪽 위는 챔피언을 뜻하는 왕관이고 아래쪽 숫자 9는 소속팀에서의 등번호다. 오른쪽 아래 그림은 자신의 얼굴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북한 축구의 특징은….
“조선 대표팀은 수비 위주다. 골을 못 넣는 한이 있어도 점수를 안 줘서, 적어도 비기겠다는 게 목표다. 재미있는 축구는 아니다. 축구는 원래 놀이인데, 이걸 무시하고 승부를 위한 축구를 한다. 경기 내용에서는 졌는데도 승부에서는 이기거나 비기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싸우는 방법도 있구나 깨달았다. 정신력이 대단하다. 전술이나 스포츠과학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큰 장점이 있다.”
―북한 선수 수준은….
“어떤 환경에서도 100% 임무를 수행해 좋은 성적을 내려는 자세가 좋다. 돈이 아니라 목표 그 자체를 위해 열심히 뛴다. 개인적으로 배울 점이 많다.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이들이 한국이나 일본 프로팀에 들어가면 어떨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뛰어난 선수가 많다는 점이다. 홍영조 같은 선수는 참 잘한다.”
―친한 한국 선수가 있나.
“일본에서 뛰는 이근호(주빌로 이와타), 잉글랜드 팀의 조원희(위건 애슬레틱)와 친하다. (김)남일(일본 빗셀 고베) 형님과도 자주 연락한다. 이근호는 엄청난 선수다. 브라질 선수 같은 공격력으로 한방에 승부를 가른다. 일본엔 이런 선수가 없다.”
―북한의 축구 환경은 어떤가.
“조선에 5번 정도 가봤다. 시설은 안 좋다. 스타디움도 낡았다. 잔디 자체는 좋은데 그 아래 땅이 울퉁불퉁하다. 공이 불규칙하게 튀어서 외국 선수들은 불만이 많을 것이다, 실력 발휘가 안 되니까. 상대가 싫어하니 우리 선수들은 오히려 힘이 나는 측면도 있다.”(웃음)
―국적이 한국이라고 들었다.
“재일동포 2세인 아버지는 고향이 경북 의성이고 한국 국적이다. 어머니는 조선 국적이다. 나는 태어나면서 자동적으로 아버지 국적을 따르게 됐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민족학교(총련계 학교)에서 민족교육을 받았다. 나를 포함해 재일동포를 길러주고 살려주고 교육시켜준 것은 조선이다. 나의 조국은 조선이고 어릴 때부터 조선대표로 뛰고 싶었다. 국제축구연맹(FIFA)에 내가 일본에서 태어난 것과 남북의 역사적 배경을 얘기했더니 이해해줬다. 2007년 7월 조선대표가 됐고, 총련 등 주위 분들 덕분에 조선 여권을 받았다. 외국에는 북한 여권으로 나간다. 한국 갈 때는 영사관에서 임시 여권을 받는다.”
그의 형 정이세는 한국의 실업팀 노원 험멜의 골키퍼다. 그의 가족사에는 한국 현대사가 그대로 묻어 있다. 정대세는 “국적 문제는 복잡해서 나도 100% 알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서 편지가 왔다던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를 앞두고 장군님 편지가 팀 앞으로 왔다. 그 안에 내 이름도 들어 있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꼭 이겨라’라는 것이었다. 장군님 얼굴을 직접 본 적은 없는데 보고 싶다.”
―여가시간에는 뭘 하나.
“힙합을 좋아한다. 흑인 가수가 좋다. 힙합 가수로는 2pac, 리듬앤드블루스(R&B) 가수로는 조(Joe)를 좋아한다. 마이클 잭슨은 백인인 줄 알았는데 최근 TV에서 옛날 영상을 보고 흑인이란 걸 처음 알았다. 한국 가수는 왁스, DJ DOC, 원더걸스가 좋다. 한국클럽에 가면 18번인 원더걸스의 텔미를 부르면서 춤도 춘다.”
―성격이 참 밝다.
“축구 스타일은 공격적이지만 성격은 민감하고 기분파다. 기분에 따라 말하고 행동한다. 여자친구가 좋으면 좋다고 바로 말한다. 변화구는 싫다. 스트레이트(직구)로 승부한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정대세는
△1984년 일본 아이치(愛知) 현 나고야(名古屋) 시 출생 △아이치 조선초급학교, 도슌(東春) 조선초중급학교, 아이치 조선중고급학교, 도쿄 조선대 △2006년 일본 프로팀 가와사키 프론탈레 입단 △2007년 북한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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