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감독은 축구에 대한 전략과 전술, 트레이닝 방법론에 능했다. 선수들의 심리를 파악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당시 대표팀 코치였던 박항서 전남 드래곤즈 감독은 “선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까지 알 정도였다”고 말했다. 허정무 대표팀 감독은 “히딩크 감독이 한국을 떠나 호주와 러시아에서도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심리 전문가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허 감독도 요즘 스포츠 심리학에 빠져 있다.
히딩크 감독은 지난해 7월 히딩크 재단의 시각장애인 축구장 건립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을 때 프로농구 KCC 허재 감독을 만났다. 당시 월드컵 4강 코칭스태프끼리 모인 자리에 허 감독이 나타난 것이다. 2005년 5월 KCC 사령탑을 맡은 허 감독은 성적 부진으로 고민하다 ‘4강 제조기’ 히딩크 감독이 온다는 소식에 실례를 무릅쓰고 한 수 지도를 받으러 왔다. 허 감독은 “그 자리에서 히딩크 감독이 여러 얘기를 해줬는데 ‘선수들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감독이 먼저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것을 가장 강조했다”고 말했다.
허 감독은 즉시 변했다. ‘농구 대통령’으로 불리던 허 감독은 눈높이를 낮춰 선수들에게 다가갔다. 서장훈(전자랜드)의 트레이드 파동 속에 한 달 가까이 혈변을 보는 고통을 맛봤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고 선수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부상 선수가 쏟아졌지만 후보들에게도 믿음과 기회를 주며 공백을 매웠다. 감독으로서도 정상에 오른 배경에는 허 감독의 ‘히딩크 배우기’가 있었던 셈이다.
보통 스타플레이어 출신은 자기가 최고인 줄 안다. 그래서 지도자로서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허 감독이 보여준 ‘히딩크 따라잡기’는 스타 출신 지도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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