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스펙트럼] 모두 잠든 후에도 ‘추’는 멈추지 않는다

  • 입력 2009년 3월 14일 07시 53분


9일 일본 도쿄에서 미국 애리조나로 넘어오는 전세기 안이었습니다. 모두들 피로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나 일본을 1-0으로 짜릿하게 이긴 날이었기에 그 밀려드는 피로감조차 달콤하게 느껴졌습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사무국에서 준비한 특별 전세기 안에서 선수들은 하나 둘 잠을 청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2시쯤 됐을까요? 추신수가 몰래 노트북을 켜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반쯤은 감겨가던 기자의 실눈이 우연히 대각선에 앉은 그의 노트북으로 옮겨졌습니다. ‘다른 선수들처럼 영화나 드라마를 보겠지….’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야구 동영상이었습니다. 노트북 화면에는 벼락같은 스윙으로, 총알같은 타구를 외야담장 너머로 넘겨버리는 타자가 등장했습니다. 그는 또다시 다른 장면을 돌려봅니다. 다른 구장에서, 다른 투수를 상대로, 또 미사일 같은 홈런포를 쏘는 타자. 그 주인공은 바로 추신수 자신이었습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굳이 그가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이 되더군요. 모두가 잠든 사이에 그는 그렇게 자신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좋았을 때의 타격폼을 익히기 위해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있었던 거지요. 1라운드의 부진에 그의 속마음이 얼마나 시커멓게 탔던 것일까요.

13일 LA 다저스전이 끝나고서야 그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습니다. 전세기 안에서 그 장면을 훔쳐본 얘기를 했더니 그는 “보셨어요?”라며 겸연쩍은 미소를 짓고 맙니다. 그는 다저스전에 앞서 김성한 코치와 땀을 뻘뻘 흘렸습니다. 그라운드 한쪽 구석에서 방망이를 수없이 돌렸습니다. 평소엔 경기 전 훈련 때 적으면 20-30개, 많아야 50개의 공을 때리는 그지만 이날 입술을 앙다문 채 200 차례 이상 스윙을 했습니다.

“아마 최근 9년 동안 가장 많이 친 것 같아요. 실전감각도 없고, 타격감도 안 좋고. 1라운드부터 공은 잘 보였지만 쳐야하는 볼이 파울이 되고 타이밍이 늦고…. 저도 잘 하고 싶어요. 좋은 선수들과 같이 태극마크가 달린 유니폼을 입고 뛸 날도 사실 얼마 안 남았잖아요. 태균이, 대호 어릴 때부터 친구였는데 잘 치더라고요. 태균이 대호 보면서, 또 현수 보면서 나도 많은 걸 배우고 있어요.”

이제 2라운드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추추 트레인’ 추신수가 그 벼락같은 스윙을, 그 미사일 같은 홈런포를 보여줄 수 있을까요? 태극마크에 대한 열정, 그리고 땀과 꿈을 하늘이 배신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기차의 ‘추추’ 기적소리가 우렁차게 들리기를 기대하면서.

피닉스(미 애리조나주)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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