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뜨거웠던 여름, 어릴 때부터 우등생이었던 막내가 성인이 된 뒤 큰일을 해냈습니다. 누구와 만나도 주눅 들지 않는 당찬 막내. 가족들의 자랑이 됐습니다. 집안에 경사 났다고 어깨를 우쭐하고 가슴을 폈습니다.
그러나 막내가 이번에 옆집 애들에게 쌍코피가 터지도록 얻어맞았습니다. 그것도 맏형하고 손을 잡고 나간 길에서 말입니다. 그 맏형은 손도 쓰지 못했습니다. 동생은 구석으로 몰래 빠져나가 웁니다. 그걸 본 맏형은 “못난 형을 탓하라”며 같이 울먹거립니다.
유치한 얘기를 만들었나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대표팀 투수 김광현과 포수 박경완(37·사진) 얘기입니다. 김광현은 1988년생으로 대표팀 투수 중 임태훈과 함께 막내입니다. 박경완은 28명의 태극전사 중 최고령 선수고요. 둘은 2007년부터 SK에서 한솥밥을 먹었지요. 김광현이 지난해 최고투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능력이 출중한 덕분이지만, 최고포수로 평가받는 박경완의 알뜰살뜰한 내조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김광현이 난타당한 날, 박경완은 “마치 내가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고 했습니다. 일본이 김광현을 해부하고 들어왔다지만, 어쩌면 지난해 일본 스카우트들이 국내 구장을 돌아다니며 변화구를 선호하는 자신의 볼배합과 성향까지 낱낱이 연구한 게 아닐까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더랍니다.
박경완은 12일(한국시간) 샌디에이고전이 열리기 전 7일의 일본전을 곱씹었습니다. 타순은 물론 볼카운트 하나까지 머리 속에 아프게 입력돼 있더군요. 그러면서 그날의 실패를 자신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연타를 맞을 때 나조차 정신이 멍해졌다. 변화구가 맞으면서 직구 타이밍도 놓쳐버렸다.”
그래서 9일 일본전에서는 독기를 품고 변화구만 노리는 일본타자들에게 직구 위주로 승부했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 모양입니다. 입술을 깨물면서 “김광현이 대한민국 넘버원 투수인데 그렇게 맞아 내가 더 화가 났다. 기회가 된다면 일본전에 다시 한번 김광현과 배터리를 이뤄 붙어보고 싶다”고 말하는 걸 보니.
차라리 자신이 얻어터져 쌍코피를 흘렸으면 이렇게 원통하지는 않을 텐데 자신만 믿고 던진 막내 동생이 콜드게임패의 주범으로 몰리는 게 맏형은 더욱 마음 아픈 모양입니다. 박경완을 보면서 맏형은 그런 존재라는 걸 느꼈습니다. 언제나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존재.
피닉스(미 애리조나주)|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