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연패 감독이 氣 펄펄 살아있다니…

  • 입력 2009년 1월 9일 02시 58분


‘동네북’ KEPCO45 공정배 감독의 희망가

“저보고 거짓말쟁이라고 해요. 시즌 개막전 출사표를 낼 때 ‘각 구단을 상대로 1승씩은 꼭 하겠습니다’라고 했어요. 그런데 3라운드가 끝나갈 때까지 한 번도 못 이기니 주위에서 ‘감독이 사기 치고 다닌다’고 해요. 그런 말을 들을 때가 가장 힘들죠.”

지난 시즌도 힘들었다. 올 시즌은 더욱 힘들다. 11년간 KEPCO45(옛 한국전력)를 이끌고 있는 공정배(47) 감독은 요즘 웃으려고 노력한다. 팀이 힘든 상황에서 웃고 다니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자신감만은 잃고 싶지 않아서다.

3라운드가 진행 중인 프로배구 V리그에서 KEPCO45는 개막전부터 14연패를 하며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아마추어 초청팀으로 참석했던 지난 시즌에는 오히려 4승(31패)을 거뒀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신협상무에도 올 시즌 2패를 당했다. 이달 말부터 시범경기에 참가할 예정인 신생팀 우리캐피탈마저 “KEPCO45를 1승의 제물로 삼겠다”며 자존심을 긁고 있다.

한마디로 동네북이 됐다. 공 감독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

“주위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다니기도 이제 지쳤어요. 어떤 분들은 괜찮다고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게 어디 쉽나요. 저도 이기고 싶죠.”

KEPCO45가 올 시즌 프로구단으로 변신하면서 바뀐 것은 유니폼뿐이다. 신인 드래프트에 처음 참가해 1라운드에서 문성민을 지명했지만 독일로 가버렸다. 2, 3라운드에서 뽑은 6명의 선수는 즉시 전력감으로 활용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사람들이 상무한테는 지면 안 된다고들 해요. 하지만 상무에는 1라운드 드래프트 출신이 5명이나 있어요. 그런 상무를 상대로 드래프트에서 뽑히지 못하고, 프로팀에서 방출당한 선수들과 신인 선수들로 승리를 거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에요.”

KEPCO45는 외국인 용병을 뽑을 수도 있지만 한 명 보강만으로 전력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만큼 1억∼2억 원을 들이는 모험을 하지 않았다.

“냉정하게 말해 올 시즌 우리 팀은 35전 전패를 당할 수도 있어요. 이 때문에 선수들에게 ‘이기지 못해도 좋다. 다만 악착같이 하는 모습을 보여 달라. 패배에 대한 책임은 모두 내가 지겠다’고 얘기하죠.”

올 시즌 독일 프로배구로 진출한 문성민의 공백은 아쉽다. 뽑아놓기는 했지만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언젠가 오겠죠. 성민이는 우리 팀은 물론 한국 배구를 위해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돌아오면 팀의 간판이자 프랜차이즈 스타로 키울 생각입니다. 대접도 확실하게 해줘야죠.”

KEPCO45에는 미래가 있다. 4월 제대하는 세터 김상기와 언제일지는 몰라도 문성민의 합류는 ‘우리가 이럴 때도 있었지’라며 2009년을 추억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의왕=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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