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다시찾은 마운드…‘강한男’을 보여주마!

  • 입력 2008년 9월 2일 08시 43분


2001년 대구상고를 졸업한 뒤 역대 고졸신인 최고계약금 5억3000만원을 받고 입단한 유망주. 그러나 2001년부터 2003년까지 3년간 1군 마운드에서 거둔 성적은 19경기 등판, 24.1이닝 1승1세이브 방어율 5.55. 2004년 말 프리에이전트(FA) 박진만 보상선수로 현대 유니폼을 입었지만 단 한번도 1군에 오르지 못했다. 구름처럼 허공을 떠돌았고, 그러면서 안개처럼 이름도 서서히 잊혀져갔다. 우리 히어로즈 투수 이정호(26). 그가 다시 마운드에 섰다. 후반기 개막전이던 8월 26일 목동 삼성전. 2003년 8월 19일 대구 SK전에 마지막으로 마운드에 오른 뒤 무려 1835일 만이었다. 2-5로 뒤진 6회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해 2이닝 동안 1안타 3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직구구속은 여전히 150km대. 무엇보다 4사구가 단 1개도 없다는 점이 눈길을 모았다.

○새가슴이 아니라 컨트롤이 부족했을 뿐

과거 그를 두고 주위에서는 “새가슴”이라고 했다. 150km 중반대의 무시무시한 직구를 가지고도 마운드에만 오르면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새가슴? 새가슴이라면 불펜에서 150km 던지다가 실전 마운드에서 140km도 못던지는 투수에게 붙여야하는 별명 아닌가요? 난 타자와의 승부를 피하지 않았고, 마운드에서 빠른 공을 던졌어요. 단지 컨트롤이 부족한 투수일 뿐이었죠. 결과를 내놓지 못하니, 그런 이미지를 만들었으니 제 탓이긴 하지만.”

입단 때부터 그는 언론과 팬들의 관심이 됐다. 구단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그것은 극복하기 쉽지 않았다.

“첫해 2군에 내려가 많은 투구를 했는데 어깨가 조금 아프기 시작했어요. 검진을 받으니 수술이 필요하지만 강도 높은 재활훈련을 하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삼성 사장님이 되신 김응룡 감독님이 저를 좋아하셨잖아요. 트레이너가 혼나는 걸 보니 너무 미안해 그때부터는 아파도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나중에는 트레이너 두 분이 옷을 벗었어요. 나도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고, 통증이 있었지만 던졌어요. 몰래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던지기도 했었죠.”

○이 작은 공 하나 때문에 새가슴 소리를 들어야하나

2군에서조차 성적이 나지 않자 주위에서는 ‘새가슴’을 넘어 ‘정신이상자’로 취급하기도 했다. 2004년 7월 그는 결국 어깨수술을 했다. 그해 말 삼성은 FA 심정수와 박진만을 영입하면서 그를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했다. 삼성도 포기한 것. 그리고 현대 유니폼을 입은 뒤 2005년 3월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했다. 당시 수원구장 내에 있는 장안구청에서 근무했지만 이미 야구에 대한 의욕이 꺾인 상태였다.

“정말 야구하기 싫었어요. 이 작은 공 하나 때문에 새가슴에 환자 소리까지 들어야하나…. 야구만 아니었으면 보통사람으로 살고 있을 텐데. 야구가 싫었죠. 야구공만 보면 차 버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는 당시 ‘야구 그만두고 뭘 할까’를 궁리했다고 한다.

○난 우물안 개구리였다

그는 공익근무를 하면서 마인드도 달라졌고, 세상을 보는 눈도 새로워졌다고 했다.

“일반인들 생각이 보통 그렇잖아요. 공무원들은 일 대충하면서 국민들 세금으로 월급 받고 산다고. 그분들 힘들게 일하는 걸 보니까 나만 힘들게 살아가는 게 아니구나, 내가 우물안 개구리였구나 깨닫게 됐어요.”

야구쪽으로 다시 이끈 것은 형의 조언도 크게 작용했다. 그의 친형은 MBC-ESPN의 이성호(28) PD. 대학시절 스포츠신문 명예기자로 야구기록을 담당할 정도로 형 역시 야구를 무척 좋아했지만 현재는 축구담당 PD를 맡고 있다. 이정호와 함께 자취생활을 하던 형은 “네가 그렇게 좋아서 시작한 야구 아니냐. 최선을 다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포기해도 늦지 않은 나이다”며 동생을 달랬다.

그때부터 재활훈련에 매달렸다. 어깨 재활훈련 도중 팔꿈치 통증이 심해져 팔꿈치 인대접합수술까지 받아야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제대를 한달 앞둔 지난해 4월, 휴가를 몰아서쓰면서 현대의 2군훈련장인 원당구장에 갔다.

“첫 훈련 날 그 기분이 아직도 생생해요. 외국생활 몇 년 만에 한국에 온 기분이라고 할까요? 잔디를 밟는데 스파이크 밑에서 전해오는 짜릿한 느낌, 온몸이 짜릿하고 머리카락까지 서더라고요. 내가 모든 걸 쏟아부을 곳은 바로 이곳이라는 걸 느꼈어요.”

○삼성에 복수? 삼성은 고마운 팀

그는 올 4월부터 2군경기에 출장하면서 선발로 뛰었다. 그러나 “어차피 1군에 올라가도 중간이나 패전처리로 쓰일 건데 연투도 해보고 싶다”는 뜻을 윤학길 투수코치에게 전했다. 이정호와 대화를 많이 하던 윤 코치는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이때부터 안정된 피칭을 이어갔다. 이광환 감독은 “올림픽 기간 동안 연습경기에서도 무실점 투구를 했다. 투구수 30개 정도로 정해 중간으로 투입하겠다. 자신감만 쌓이면 장차 마무리투수 후보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복귀전은 공교롭게도 친정팀인 삼성전. 1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자 친구들이 “삼성에 복수 제대로 했네”라며 축하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삼성은 고마운 팀”이라고 했다.

“삼성리틀야구단에서 야구를 시작했고, 프로입단 때 저를 높이 평가했잖아요. ‘너무 많은 코치들이 지도해 이정호를 망쳤다’는 말도 있지만 저는 그분들이 너무 고마울 뿐입니다. 다른 선수보다 더 많은 관심도 쏟아주셨고, 저를 망치려고 그랬겠습니까. 좋은 선수로 만들어주기 위해 시간도 많이 투자하셨는데. 다만 제가 그걸 소화하지 못했을 뿐이죠. 오히려 삼성에 제가 미안하죠. 이제 지난 세월에 대한 복수만 생각할 거예요. 이 작은 공 하나에 지난 세월을 하나 하나 날려보낸다는 생각으로.”

○아버지 야구장에 모시고 싶은 게 꿈

그는 28일 삼성전과 29일 광주 KIA전까지 후반기 3경기에 중간계투로 등판해 4이닝 3안타 2사사구 1실점을 기록 중이다.

그는 아버지 얘기를 꺼내면서 갑자기 울컥했다. “야구를 그토록 좋아하셨던 부모님이 프로에 들어온 뒤 야구장에 한번도 오시지 못했어요. 그동안 제가 이러고 있으니까. 후반기 개막전에 1군 엔트리에 올랐지만 아버지께 전화도 하지 않았어요. 아버지가 집에서 TV를 보다가 우연히 제가 마운드에 선 장면을 중간부터 보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냥 ‘수고했다’ 한마디만 하시는데.”

그는 하늘을 쳐다보며 눈가로 흐르는 눈물을 애써 주워담으려 했다. 그러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예전에는 ‘못 던지면 어떡하나’라는 생각이 앞섰는데, 이제는 달라졌어요. ‘100점을 내줘도 좋다. 오늘 못 던지면 내일 잘 던지면 된다’는 생각을 해요. 앞으로 아버지가 떳떳하게 야구장에 오시도록 하고 싶어요.”

연꽃같이 연약한 이미지였던 그가 모진 세월의 풍화작용을 거치며 들풀처럼 강건해진 느낌이다. 이정호가 어떤 투수로 거듭날지 지켜봐야겠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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