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판·욕설 사라진 관중석 가족팬·여성팬 피켓 물결

  • 입력 2008년 6월 7일 0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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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야구장에서 프로야구를 관전하던 팬이 한동안 야구장에 발걸음을 끊었다가 최근 다시 찾는다면? 아마도 새로운 팬들의 응원문화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응원의 양상과 트렌드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고, 응원방식도 급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승부에 집착해 응원을 넘어 전쟁을 방불케하기도 했다. 중년의 아저씨 팬들이 술에 취해 관중석 여기저기서 싸움을 벌이기 일쑤였다. 야구가 재미없을라치면 팬들은 야구는 뒷전으로 돌리고 오히려 아저씨들의 싸움구경에 더 흥미를 느끼며 열을 올리기도 했다. 그 시절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술을 야구장으로 반입하는 기술이 좋은 사람이 주위에서 ‘에이스 대접’을 받았다. 최근에도 야구장에 갈 때 술을 갖고가는 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는 이런 류의 팬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가족단위의 팬과 연인, 젊은 여성팬이 급격히 늘면서 관중석은 건전한 여가선용의 장으로 변하고 있다. 이들의 손에는 술 대신 각종 플래카드와 요란한 응원 장식물들이 들려있다.

또한 과거에는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을 입는 팬들이 적었다. 과거에는 이를 쑥스러워했지만 이제는 당당하다. 오히려 프로야구 팬이자 특정팀의 팬이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싶어한다. 지하철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 이름과 등번호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있는 젊은 팬들이 넘쳐나고 있다. 올드팬들은 이런 풍속도에 동참해 은퇴한 슈퍼스타의 이름이 새겨진 옛 유니폼을 입고 타인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즐기기도 한다.

과거에는 관중석에서 고함을 지르고 욕설을 퍼부으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팬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기발하고도 개성있는 응원을 펼치는 팬이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고 있다. 피켓이나 종이에 써온 응원문구도 재치만점이다. 그야말로 개성의 시대다.

응원방식도 진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치어리더의 유도에 따라 파도를 타고 대중가요를 합창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롯데팬들은 ‘부산갈매기’를 합창하고, KIA 팬들은 ‘목포의 눈물’을 구성지게 불렀다. 8개구단의 공식응원가는 윤수일의 ‘아파트’였다.

물론 최근에도 20여년 전 ‘아파트’가 재건축은 커녕 여전히 건재하다. 당시에 유행하던 그 노래들이 각 팀의 응원가로 자리잡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에 덧붙여 요즘 팬들은 선수별 테마송을 직접 만들어 부른다. 특정선수가 나오면 특정 몸짓을 하기도 한다. 맞춤형이자 다양해졌다.

팬들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야구장 응원에서 개성을 표출하고 있다. 응원이 야구보다 더 재미있다고도 한다. 응원을 보기 위해 야구장에 오는 팬들도 많다. 야구장은 이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의 웃음의 장이요, 해방구가 되고 있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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