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부처 ‘無心打’ 9타차 뒤집었다

  • 입력 2008년 6월 3일 02시 55분


다시 터진 ‘태극 샴페인’선두에 9타나 뒤졌다가 극적인 역전 우승을 거둔 이선화(오른쪽)가 2006년 미국 진출 후 줄곧 호흡을 맞춰온 전담 캐디 존 윌키스의 샴페인 축하 세례를 받고 있다. 찰스턴=로이터 연합뉴스
다시 터진 ‘태극 샴페인’
선두에 9타나 뒤졌다가 극적인 역전 우승을 거둔 이선화(오른쪽)가 2006년 미국 진출 후 줄곧 호흡을 맞춰온 전담 캐디 존 윌키스의 샴페인 축하 세례를 받고 있다. 찰스턴=로이터 연합뉴스
《하늘이 내려준 듯한 기적 같은 우승이었다. 2일 미국 찰스턴의 리버타운CC(파72)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긴트리뷰트 대회. 이선화(CJ)는 선두 소피에 구스타프손(스웨덴)에게 9타나 뒤져 있어 “그저 준우승이라도 해보자”며 편안하게 최종 라운드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선화가 5타를 줄이는 사이 구스타프손은 1, 3번홀 버디 이후 갑작스러운 드라이버샷 난조로 남은 16개 홀에서 9타나 잃으며 무너졌다. 최종 합계 14언더파 274타를 기록한 이선화는 캐리 웹(호주)과 동타를 이뤘다. 웹은 연장전만 해도 통산 9차례나 치렀으며 올 유럽투어 호주오픈에서는 신지애(호주)를 연장 끝에 꺾었던 강호.》

이선화 LPGA 긴트리뷰트 우승… 통산 3승

경험과 비거리에서 모두 열세였던 이선화는 “그저 첫 홀에서 파라도 해보자”며 부담 없이 연장(18번홀·파4)에 들어갔다. 이선화는 12m 거리에서 2퍼트로 홀아웃해 목표대로 파를 세이브한 반면 오히려 세컨드샷을 7.6m 지점에 가깝게 붙인 웹은 버디 퍼트 실패에 이어 어이없이 90cm 파 퍼트마저 홀을 빗나갔다.

두 번 마음을 비운 이선화는 극적으로 정상에 올랐지만 평소 감정의 기복이 적어 ‘돌부처’라고 불리던 대로 그저 잔잔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이선화의 우승으로 ‘코리아 군단’은 지난해 7월 역시 이선화가 HSBC매치플레이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오른 것을 마지막으로 10개월 넘도록 26개 대회에서 우승 없이 준우승만 14차례에 그친 부진에서 드디어 벗어났다.

통산 3승째를 거둔 이선화는 39만 달러의 우승 상금을 챙겨 상금랭킹 4위(65만6000달러)로 점프했다. 9타 차 역전승은 LPGA투어 사상 두 번째 많은 타수 차 역전승 진기록. 미키 라이트(미국)가 1964년 톨시티오픈에서, 이 대회 주최자인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이 오피스데포에서 10타 차 역전 우승을 기록한 바 있다.

이선화는 13번홀(파4)에서 40야드를 남기고 한 세 번째 샷이 홀에 들어가는 행운의 버디에 이어 18번홀에서는 8m 거리의 장거리 버디 퍼트를 성공시켜 역전 드라마를 향한 발판을 마련했다.

경기 후 이선화는 미국 올랜도 집 주차장에 헬스클럽을 만들어 주고 늘 미국 투어에서 차를 몰아 주는 등 뒷바라지에 고생하는 아버지 이승열 씨와 감격의 포옹을 했다. 부산상고와 실업팀(경남버스)에서 축구 공격수로 활약한 이 씨는 그동안 감기 한 번 모르고 지냈으나 최근 체중이 10kg 가까이 빠져 진찰을 받은 결과 심각한 당뇨 판정을 받았기에 이날의 기쁨은 더욱 컸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2001년 15세때 국내대회 최연소 챔프 올라 화제▼

이선화는 10대 중반에 프로에 뛰어들어 다양한 경험을 했지만 이번 우승만큼 극적인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너무 크게 뒤져 있어 기대는 안 했다. 운이 많이 따랐다. 어프로치와 퍼트가 잘되면서 끝까지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말했다.

충남 천안 성정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한 그는 5학년 때 성인 프로대회인 톰보이여자오픈에 출전한 뒤 2000년 만 14세로 프로 테스트에 합격했다. 그 후 한 달도 되지 않아 국내 프로 2부 투어에서 최연소로 우승했으며 2001년 15세의 나이로 최연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정규대회(MC스퀘어여자오픈) 챔피언에 등극했다.

한국 골프 역사를 새로 써왔기에 최근 ‘코리아 군단’의 부진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했다. 5월 말 그를 만나고 돌아온 김경호 CJ 스포츠마케팅 팀장은 “선화가 극심한 부담에 시달리기에 ‘언젠가는 잘될 거다. 편하게 마음먹자’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이선화는 “한국에서 팬들이 참 오래 기다리셨을 텐데 죄송스러웠다. 내가 물꼬를 텄으니 한시름 놓았다. 앞으로 서로 더 경쟁하면서 자주 좋은 소식 전할 것 같다”고 말했다.

부상으로 크라이슬러 컨버터블 차량을 받은 그는 “지난해 아버지에게 차를 사달라고 했는데 내년에 우승하면 사준다고 하셨다. 그 돈도 절약하게 됐다”며 웃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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