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라는 이니셜을 큼지막하게 새긴 벨트 버클이 햇빛을 받아 유난히 반짝거렸다. 자신의 이름을 진정 세상에 알리게 됐다고 선언하는 듯했다. 챔피언을 결정짓는 파 퍼트를 넣은 그는 오른손 주먹을 날린 뒤 양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피가 거꾸로 솟고 등골이 오싹해지는 전율을 느꼈다.” 우승 소감처럼 그 순간은 짜릿했다. 재미교포 앤서니 김(23·나이키골프)이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풀타임 데뷔 2시즌 만에 첫 우승을 거뒀다.》 재미교포 앤서니 김, 와코비아챔피언십 우승 PGA 데뷔 첫 감격… “피가 솟는 전율 느꼈다” 5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샬럿의 퀘일할로CC(파72)에서 끝난 PGA투어 와코비아 챔피언십. 이 대회는 비록 지난해 챔피언 타이거 우즈(미국)가 무릎 수술로 빠졌어도 세계 랭킹 상위 25명 중 18명이나 출전할 만큼 강자들이 대거 정상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평소 “호랑이 잡을 사자가 되겠다”던 앤서니 김은 4라운드에 버디 6개와 보기 3개로 3언더파 69타를 쳐 합계 16언더파 272타로 우승컵을 안았다. 이날만 7언더파를 몰아친 벤 커티스(미국)를 5타 차로 제친 완승이었다. GA투어 38번째 출전 끝에 첫 승을 거둔 그는 다음 달 만 23세 생일을 앞두고 2002년 메르세데스 챔피언십 우승자(당시 22세)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 이후 6년 만에 최연소 챔피언에 올랐다. 이 대회를 공동 12위(5언더파)로 마친 세계 2위 필 미켈슨(미국)은 “앤서니 김은 대단했다. 앞으로 그가 이룰 많은 일 가운데 처음일 따름”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4타 차 단독선두였지만 앤서니 김은 선두를 지키기 위한 안전운행보다는 공격적인 플레이로 전반에만 퍼트수를 11개로 막으며 4타를 줄여 일찌감치 승부를 갈랐다. 이날 그는 드라이버 비거리를 이번 대회 들어 가장 긴 평균 309야드나 날렸다. 거리를 내다 보니 페어웨이 안착률은 43%까지 떨어졌지만 정교한 쇼트게임과 퍼트를 앞세워 스코어를 줄여나갔다. 16언더파는 대회 최소타 기록. 앤서니 김은 115만2000달러(약 11억6500만 원)의 상금을 받아 상금랭킹 35위에서 6위(206만2360달러)로 뛰어올랐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주니어시절 4년연속 MVP…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 300야드 ■ ‘미완의 골프천재’ 앤서니 김 앤서니 김은 한때 ‘철없는 아이’로 불렸다. 선배 골퍼들을 조롱하는 듯한 거침없는 언사로 여론의 도마에 올랐고 무모할 만큼 공격적인 플레이로 자멸하기 일쑤여서였다. 천재성이 있다는 과신 때문인지 훈련도 소홀히 할 때가 많았다. 그래도 그는 미국주니어골프협회에서 최우수선수로 4년 연속 선정될 만큼 일찌감치 유망주로 주목받았고 오클라호마대 시절에는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신인상을 비롯해 주요 상을 휩쓸며 미국 대표로 이름을 날렸다. 대학 3학년 중퇴 후 2006년 프로로 전향해 첫 초청선수로 출전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텍사스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기세가 등등했다. 하지만 최연소로 PGA투어에 정식 풀타임 데뷔한 지난해에는 톱10에 4차례 들었을 뿐 우승이 없었고 상금랭킹 60위에 머물며 목표로 삼은 신인왕의 꿈도 깨졌다. 처음 맛본 좌절에 한층 성숙해진 앤서니 김은 올 시즌을 앞두고 마크 오마라, 마크 캘커베키아 같은 노장들의 조언을 귀담아들었고 그 어느 때보다 훈련에 매달렸다. 땀의 소중함과 고개를 숙일 줄 아는 겸손함을 터득한 앤서니 김은 “지난해 겪은 시행착오가 내게는 쓴 약이었다. 나쁜 버릇을 고친 만큼 다가올 미래가 더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앤서니 김은 1971년 미국으로 이민 간 아버지 김성중(66) 씨와 어머니 김미령(57) 씨 사이에서 태어나 두 살 때인 1987년 골프를 시작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미주녹용건재’라는 한약 관련 업체를 운영하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혹독한 조련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78cm, 80kg으로 크지 않은 체구지만 평균 300야드가 넘는 드라이버샷을 날리며 올 시즌 퍼트까지 정교해져 상승세를 타고 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