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5’와인에 골퍼는 왜 열광하나

  • 입력 2008년 4월 4일 09시 00분


숫자와 골프에 얽힌 재미난 비밀

국민 대다수는 이렇게 얘기한다. 수학은 약하지만 산수는‘왕’이었다고.

평소에는 덧셈, 뺄셈도 잘 안 되던 사람이 고스톱 판에서는 흔들고, 쓰리고에 피박까지 한 점도 빼놓지 않고 철저하게 계산한다. 만약 고스톱이 달랑 3점으로만 끝나는 게임이었다면 추억 속의 놀이로 사라졌을 것이다.

스포츠 숫자에는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야구팬은 좋아하는 선수의 안타 하나, 홈런 하나에 열광하고, 축구팬은 어느 팀이 몇 대 몇으로 승리했는지, 패했는지에 따라 하루 일과가 달라진다.

국민들의 ‘산수 심리’를 잘 파고들어 인기를 끌게 된 스포츠가 바로 골프다. 일단 플레이가 시작되면 골퍼들의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자기가 친 타수는 물론 동반자 3명의 타수까지 일일이 체크해야한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 날에는 몇 홀을 더 버텨야 ‘만세’를 부르지 않고 홀 아웃 할 수 있을지 암산에 몰두한다.

의미가 담긴 숫자도 많다. 골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1872’는 골프의 기준 타수인 18홀 72타라는 뜻이 담겨있다. 스크래치 골퍼가 되기를 열망하는 골퍼들은 이 숫자에 상당히 예민하다.

어떤 골퍼는 집 전화에 휴대전화 번호까지도 ‘1872’로 통일해 사용하면서 스스로 최면을 건다. 모 골프용품 회사는 대표 전화번호로 ‘1872’를 사용해 암기하기 쉽게 했다.

최근에는 ‘1865’라는 와인이 골퍼들에게 인기가 높다. 평생 쳐도 하기 힘든 18홀을 65타로 마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그 포도주에 골퍼들이 더욱 열광하는 것이다. ‘9017’은 ‘golf’의 알파벳을 숫자화 한 것이다. 골프관련 회사에서 인터넷 홈페이지 주소나 전화번호로 많이 사용하면서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108’도 골프와 운명공동체다. 인간의 과거, 현재, 미래에 걸친 108가지 번뇌(백팔번뇌)처럼 골프에서의 ‘108’도 골퍼를 괴롭게 만든다. 18홀을 더블보기 플레이로 끝내면 108타가 되고, 골퍼들을 외면(?)하는 홀의 크기도 108mm이다. 야구공의 실밥도 딱 108개다.

‘100’도 골프와 연관이 깊다. 학창시절엔 그렇게 해보고 싶어도 하지 못하던 100점이 골프에서는 지겨울 정도로 쫓아다니며 초보 딱지를 떼지 못하게 만든다. 초보골퍼의 꿈은 100타를 깨는 것이다. 이름하여 100파.

이밖에 ‘19’는 묘한 느낌을 담고 있다. 숫자 자체는 골프와 전혀 무관하지만 18홀 골프가 끝난 뒤를 뜻하는 은어로 마치 ‘19세 관람 불가’를 연상시킨다.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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