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코치, “한국시리즈 4연패로 지는 줄 알았어요”

  • 입력 2007년 11월 5일 14시 58분


코멘트
SK 와이번스가 한국시리즈 정상에 선지 1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다. 우승컵을 들어올린 벅찬 감동이 여전히 생생하지만 SK 선수들은 모든 영광을 뒤로 하고 쌀쌀했던 지난 2일 오전, 문학야구장에 다시 모였다. 최고참 가득염에서 막내 김광현까지, 그리고 두 명의 용병 등 주력 선수들이 모두 포함됐다.

오는 8일부터 일본에서 시작되는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에 한국대표로 출전하는 SK는 2일부터 훈련을 재개했다. 사실 시즌이 끝난 후 쉬지도 못하고 출전하는 대회가 선수들에게는 반가울 리 없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선수들의 얼굴에선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심지어 용병투수 케니 레이번은 한 구단 관계자가 안부를 묻자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not very good(좋지 않다)”이라며 퉁명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곧 이만수 SK 수석코치가 노트 한 권을 들고 나타났다. 선수들을 집합시킨 이만수 코치는 노트에 적힌 김성근 감독의 지시사항을 선수들에게 전달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코나미컵에 놀러가는 것이 아니다. 이기기 위해서 간다. 지난해 삼성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하고도 코나미컵에서 부진한 뒤 삼성의 강한 이미지가 많이 퇴색했었다. 우리는 그런 전철을 밟으면 안 된다.”

개인사정으로 첫 훈련에 불참한 김성근 감독을 대신해 이만수 코치는 이렇게 첫 날 훈련을 시작했다. 늘어졌던 선수들의 긴장감도 이만수 코치의 말에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의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직접 훈련을 주도하며 늘 그렇듯 선수들과 함께 땀을 흘린 이만수 코치를 만났다. 오랜 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서 보낸 지난 1년의 소회를 들어보고 싶었다.

스포츠동아 : SK 우승 후 시카고 화이트삭스 시절 동료들과 통화는 했나?

이만수 코치(이하 이) : 아지 기엔 감독과 통화했고 몇몇 코치와 선수들에게도 우승 소식을 전했다. 그랬더니 모두들 기뻐하고 축하해 주더라. 그리고 미국에 있는 많은 지인, 그리고 친구들과도 통화했다.

스포츠동아 : 아직 미국 생활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다시 돌아가고 싶기도 한가?

이 : 미국에 친구들이 많으니까 자주 생각나는 건 사실이다. 미국에서 알게 됐고 지난 동계훈련 때도 직접 찾아와 응원해 줬던 일본인 팬 사이토 유키씨가 나를 보러 이번 코나미컵까지 온다고 해서 무척 감동했다. 이런 친구들 때문에 미국 생활이 참 그립다.

스포츠동아 : 한국에서의 코치 생활은 지낼 만 했나?

이 : 힘들었던 한 해였다. 지난겨울부터 한국시리즈 끝날 때 까지 단 이틀, 그리고 우승 후 이틀해서 총 4일밖에 못 쉬었다. 수석코치를 맡으면서 팀에서 궂은일을 도맡아했고 본의 아니게 선수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기도 했다. 때때로 내 의도와 다른 일을 하게 되어 서글프기도 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님께 많은 노하우를 전수 받았고 앞으로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한 것 같아 의미 있는 1년 이었다.

스포츠동아 : 올해 SK가 우승까지 갈 것으로 예상했나?

이 : 처음에 마무리 훈련에 합류해서 선수들을 봤을 때 상당히 실망했다. 김성근 감독님도 “형편없는 수준”이라며 크게 걱정하셨다. 문제는 여러 부분에서 나타났다. 고참들은 나태함에 빠졌고 젊은 선수들은 또 그들대로 의욕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감독님이 이름값에 연연하지 않고 과감하게 실력이 떨어지는 고참 선수들을 정리하고 실력에 따른 선수기용을 펼치자 팀 전체에 활기가 돌았다. 시즌 말에는 오히려 고참들이 크게 분발하면서 신구의 조화가 잘 이루어졌고 이 것이 우승의 원동력이 됐던 것 같다.

스포츠동아 : SK가 추구한 스포테인먼트는 성과가 있었나?

이 : 이제 첫 걸음이다. 하지만 여러 시도를 했다는데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특히 선수들의 자세가 바뀌었다. 예를 들어 처음에 내가 선수들한테 관중들 앞에서 춤춰 보라고 했을 때 아무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선수들이 관중들 앞에서 자연스럽게 춤도 추며 ‘팬과 함께 하는 야구’를 몸에 익히게 됐다. 하지만 우리가 메이저리그의 구단 운영 스타일을 따라가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서구와 동양의 차이가 있듯이 한국에서는 한국에 맞는 야구와 팬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만의 장점을 살린다면 스포테인먼트가 머지않아 확실히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스포츠동아 : 한국시리즈 이야기를 해보자. 정말 치열했던 명승부였는데...

이 : 처음에 우리가 2연패 했을 때 나는 그냥 4연패로 끝나는 줄 알았다. 2차전까지 두산이 정말 야구 잘하더라. 또 우리는 정규시즌 후 15일 가량 쉬면서 실전 감각이 떨어져 이래저래 곤란한 상황이었다. 2연패 후 팀 분위기가 굉장히 침체되어 있었는데 3차전을 앞두고 하루 쉬는 날, 내가 선수들을 모아놓고 “나는 현역시절 7번이나 한국시리즈에 나가서 모두 졌다.”면서 내 경험을 얘기해 줬다. 질 때 지더라도 최선을 다하자고 했고 3차전을 맞이했다. 그런데 3차전에서 빈볼시비로 난투극이 일어났는데 공교롭게도 이 일로 우리 선수들이 더 독이 오르고 똘똘 뭉치는 계기가 됐다. 결국 3차전을 잡은 후 4차전에서는 이상하게 두산 선수들의 플레이가 상당히 소극적으로 변해 있더라. 반면에 우리 선수들은 1,2차전 때의 두산처럼 적극적으로 플레이하게 됐고. 분위기가 180도 뒤 바뀐 것이다. 5차전마저 우리가 이기자 6차전에서는 두산 선수들 몸이 완전히 굳었고 그제야 승리를 확신하게 됐다.

스포츠동아 : 그렇다면 빈볼시비가 일종의 터닝포인트가 됐다는 이야기인가?

이 : 절대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 SK 선수들이 경기를 거듭할수록 몸이 풀렸고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 역전극의 발판이 된 것이다. 하지만 빈볼시비가 팀 전체를 더 뭉칠 수 있게 만든것은 사실이다.

스포츠동아 : 시리즈 내내 몸쪽공 문제로 시끄러웠다. 빈볼시비의 발단이 되기도 했는데

이 : 우리 투수들이 몸쪽 공을 많이 던지다보니 본의 아니게 몸에 맞는 볼이 많이 나왔다.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절대 고의는 없었다. 빈볼시비는 시리즈 동안 두 팀 선수들 모두 긴장해 있었고 격해지다 보니 발생한 불상사라고 생각한다.

스포츠동아 : 정근우 선수의 수비도 논란이 많았다. 두산의 주자였던 이종욱의 다리를 잡은 사진이 인터넷에 뜨기도 했었다.

이 : 시즌 내내 정근우의 수비 문제로 말들이 많았다. 정근우가 올해 유격수가 처음이다. 유격수 수비를 처음하다 보니 아무래도 서툰 점이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종욱의 다리를 잡은 문제는 내가 덕아웃에서 봤을 때 이종욱의 다리가 단순히 그냥 걸려 넘어졌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그날 밤에 인터넷에 오른 사진을 보니 정근우의 팔이 이종욱의 다리를 잡고 있는 것이 찍혀 있었다. 그래서 정근우에게 가서 확인했는데 절대로 고의가 아니었다고 하더라. 설명을 하자면 정근우가 포수의 송구를 뒤로 빠트리면서 외야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와중에 몸이 돌아갔고 그러면서 팔이 이종욱의 다리에 걸린 것 같다.

스포츠동아 : 정근우 선수가 이 일로 상당히 많은 비난을 받았다.

이 : 이번에 느낀 거지만 두산의 팬들이 우리 팬보다 훨씬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정근우에 대한 비난 정도가 상당히 높았고 거셌다. 그래서 나는 그 일로 정근우의 플레이가 많이 위축될까 걱정했다. 하지만 성격이 워낙 활달하고 적극적인 선수라 쉽게 극복해 내더라.

스포츠동아 : 김성근 감독의 스타일을 평가하자면?

이 : 김성근 감독님의 야구를 데이터 야구라고 하는데 그보다는 감독으로서 게임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적재적소에 선수를 기용하는 용병술은 놀라울 정도였다. 또 감독님으로부터 ‘지도자는 어때야한다’는 조언도 많이 들었다. 올 한해 감독님의 작전과 경기에 대한 내 느낌을 빠짐없이 노트했다. 앞으로 지도자 생활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스포츠동아 : 1년 동안 한국야구를 겪으면서 야구의 기술적인 수준을 제외하고 미국 메이저리그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었나?

이 : 한국에는 구단-선수-팬-언론 간에 소통이 막혀 있다고 느꼈다. 이 4가지는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서로 상생하는 자세가 필요한데 한국에서는 이 부분이 다소 부족했다. 이 점이 한국야구와 메이저리그와 가장 큰 차이점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들 사이에 벽이 있고 언로가 막혀있다. 같이 살기 위해 서로서로 도와줘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다보니 모두 손해를 보는 것 같다. 올해 스포테인먼트를 표방한 SK는 이 4가지의 유기적인 관계를 상당부분 개선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스포츠동아 : 앞으로 목표를 말해 달라

이 : 일단 코앞으로 닥친 코나미컵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싶다. 그리고 SK를 명문구단으로 만드는데 일조하는 것이 목표다.

정리=정진구 스포츠동아 기자 jingoo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