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에 울고 웃은 한국프로야구?

입력 2007-09-27 10:42수정 2009-09-26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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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야구가 96년 이후 처음으로 연 관중 400만명을 돌파하는 ‘경사’를 맞았다.

올해 한국프로야구는 지난 26일까지 전체 일정의 95%인 479경기를 소화하는 동안 총 4,011,421명(경기당 평균 8,375명)이 야구장을 찾아 전년도 대비 100만명 이상이 증가했다.

400만명 관중 동원은 올해가 5번째. 한국프로야구의 첫 번째 르네상스로 불리는 93년부터 96년까지 4년 연속으로 400만 관중을 넘어선 이래 11년 만에 나온 ‘흥행대박’이다.

이처럼 올해 한국프로야구가 관중몰이에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보다 각 구단의 노력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전년대비 무려 98%의 관중이 증가한 SK는 시즌 전부터 팬과 함께 하는 ‘스포테인먼트’를 표방하며 적극적인 마케팅에 나섰고 여기에 팀 성적(정규시즌 1위)이 맞물리면서 팬들을 홈구장으로 끌어오는데 성공했다. 이밖에 팬 층이 두터운 두산, LG, 롯데 등도 경기당 평균관중 1만명 이상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박찬호의 등장과 한국프로야구의 몰락

이러한 각 구단의 노력과는 별도로 한 가지 외부요인이 한국프로야구의 흥행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프로야구의 관중 추이를 잘 살펴보면 공교롭게도 ‘코리언 빅리거’ 박찬호의 활약 여부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94년 당시 한양대를 중퇴한 무명의 우완투수 박찬호가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자 국내 야구팬들 사이에서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이후 박찬호가 2년간의 적응기간을 거쳐 97년, 일약 14승 투수로 성장하자 국내에 메이저리그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이후 박찬호가 2001년까지 해마다 10승 이상씩을 꾸준히 올려주는 동안 메이저리그의 인기는 정점을 찍었다. 초등학생들조차 박찬호가 소속된 LA 다저스 라인업을 줄줄 외고 다닐 정도가 됐고 IMF 외환 위기를 겪으며 박찬호의 승전보는 온 국민에게 유일한 위안이 됐다.

이 기간 한국프로야구는 극심한 침체기를 겪었다. 앞서 언급했듯 96년까지 400만 관중을 넘어섰던 한국프로야구는 박찬호가 첫 풀타임 메이저리그 선발투수가 된 97년, 300만대로 떨어졌고 98년 263만명으로 급전직하 추락하기 시작했다. 박찬호가 전성기를 구가한 2001년까지 한국 프로야구는 99년 322만명을 제외하고 연 관중 200만명대에 그치며 흥행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박찬호의 활약으로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메이저리그는 전체적으로 수준 높은 선수들의 기량, 그리고 훌륭한 경기장 시설 등 한국프로야구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국내 야구팬들을 빠르게 흡수해 갔다.

그러나 박찬호가 2002년 텍사스로 이적한 후 부진에 빠진 반면 한국프로야구도 2005년 다시 300만 관중을 넘어서며 부활의 기지개를 켰다. 결국 올해, 박찬호는 기량 하락으로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며 팬들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한국프로야구는 400만 관중 돌파로 제 2의 르네상스를 열며 전세를 역전시키기에 이르렀다.

빅리그 경험이 있는 우수한 용병 수입으로 경기 수준이 향상됐고 다양한 메이저리그식 이벤트와 홍보기법을 도입, 팬 서비스의 질을 높인 것도 한국프로야구가 메이저리그의 인기를 능가하게 된 이유였다. 반면 김병현 등 몇몇 선수가 남아있지만 메이저리그는 점차 매니아들만의 전유물이 되며 국내에서 점차 저변이 줄어들고 있는 처지다.

정진구 스포츠동아 기자 jingoo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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