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대 사상 첫 프로농구선수 2명 배출 임달식 감독

  • 입력 2007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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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점프볼
사진 제공 점프볼
최고봉
“여기저기서 전화도 오고…. 좀 얼떨떨하네요.”

조선대 농구부 임달식(43·사진) 감독은 1일 프로농구 신인드래프트가 끝난 뒤 축하받느라 바빴다. 조선대 남정수와 최고봉이 각각 KTF와 모비스의 지명을 받아 꿈에 그리던 프로 유니폼을 입게 됐기 때문이다. 조선대 출신 프로농구 선수가 사상 처음으로 탄생한 것이었다.

“힘든 가운데서도 다들 열심히 운동한 덕분이죠.”

○ 허재와 주먹다짐 후 9년간 농구계 떠나

겸손하게 말했지만 프로 선수를 배출할 수 있었던 데는 누구보다 임 감독의 공로가 컸다.

임 감독은 휘문고와 고려대를 거쳐 현대에서 뛰는 동안 엘리트 코스만 밟은 스타 출신.

하지만 이젠 떠올리기조차 싫은 1989년 농구대잔치 결승에서 기아 허재와 주먹다짐을 벌인 일로 1년 자격정지를 받은 뒤 방황 끝에 1992년 은퇴했다. 그 후 골프에 빠져 한국프로골프협회(KPGA)의 정식 세미프로 자격증까지 땄다. 베스트스코어는 68타. 1997년부터는 2년 넘게 서울 강남에서 유명 한정식 집을 경영했다.

‘야인’으로 10년 가까이 지내던 그는 대학 은사였던 박한 대학농구연맹 회장의 권유로 2001년 조선대 감독에 부임했다. 당시 대학농구 2부 리그였던 조선대는 농구팀이라고 말하기엔 민망할 정도의 환경이었다. 팀 내에 농구공이 3개밖에 없을 정도였다.

아무 연고도 없는 광주에 둥지를 튼 임 감독은 우선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선수들의 패배 의식을 없애는 데 공을 들였다. “팀 내 청백전을 하더라도 이긴 쪽에는 상을 주고 지면 아주 혼을 냈습니다. 근성을 길러 주려고 애썼죠.”

○ 2001년 팀 맡아 4년 만에 1부리그 승격

임 감독의 지도 아래 팀다운 모습을 갖춰나간 조선대는 2004년 농구대잔치 2부 리그에서 우승하며 이듬해 1부 리그에 승격했다. 감독이 되고부터 그렇게 즐기던 골프도 멀리한 그는 2004년에는 2부 리그 지도자로는 첫 대표팀 코치에 발탁됐다. 다른 팀이 모두 스카우트 작업이 끝난 뒤 남은 선수로 전력을 보강해야 할 형편에서 유망주들의 잠재력을 키워 나갔다.

“프로에 갔다고 끝난 건 아닙니다. 잘 적응해 후배들에게 좋은 모델이 돼야 할 텐데….”

임 감독의 제자 걱정은 끝이 없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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