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틈탄 엉큼男…거리응원 성추행범 기승

  • 입력 2006년 5월 27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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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한국 대표팀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대표팀의 축구 평가전이 열린 26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과 동아일보사 앞 청계광장은 붉은 물결로 넘쳐났다.

이날 오후 5시경부터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한 길거리 응원단은 경기가 시작된 오후 8시경 2만여 명으로 늘어 대형 전광판 앞은 앉을 자리가 없었다.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이들은 뒤쪽에 서서 응원전에 나섰다.

‘대∼한민국’이란 함성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불청객이 하나 둘씩 등장했다. 이른바 ‘똥빵’들이다. 똥빵이란 번잡한 곳에서 여성들을 성추행하는 사람을 뜻하는 경찰 은어.

평소 혼잡한 출퇴근 시간에 ‘콩나물 지하철’을 주무대로 삼지만 대형 집회 때는 넓은 곳으로 활동 반경을 넓힌다.

이날 오후 7시 반경. 응원단 뒤쪽에서 빨간 수건을 흔드는 20대 초반의 여성 일행 3명을 지그시 바라보는 남자가 눈에 띄었다. 그는 일행 중 청바지를 입은 여성에게 접근하더니 하체를 밀착시켰다. 이 여성은 응원에 푹 빠진 듯 눈치를 채지 못했다.

이어 이 남자는 왼쪽으로 몇 걸음 옮기더니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있는 30대 초반의 여성에게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잠시 후 뭔가 이상했는지 이 여성이 뒤를 돌아보며 항의를 하려 하자 그는 다짜고짜 욕설을 퍼부었다.

당황한 여성이 울먹이는 순간 한 남자가 그를 덮쳤다. 똥빵을 잡기 위해 출동한 서울 지하철수사대의 형사였다. 성추행범은 거칠게 항의했지만 그의 바지 지퍼는 이미 내려져 있었다. 그는 50대 후반의 중소기업 간부였다. 형사가 “내가 당신이 23일 세네갈전 응원전에서도 같은 짓을 하는 것을 봤다”고 말하자 그는 체념한 듯 신분증을 내놨다.

오후 8시경 경기 시작을 알리는 축포가 터지자 50대 중반의 신사가 응원단 뒤를 돌기 시작했다.

그는 재킷으로 앞섶을 가리고 자신의 하복부를 만지다가 지나치는 여성들의 엉덩이와 허벅지를 손으로 부비며 광장 주변을 빙빙 돌았다. 대부분의 여성은 인파가 많아 밀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냥 지나쳤다.

이번엔 일선 경찰서에서 나온 다른 형사가 그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그는 경기 수원시에서 자영업을 하는 55세의 남자였다. 그는 “딸이 알면 안 된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이날 현장에서 똥빵 검거에 나선 경찰은 7명. 일선 경찰서와 지하철수사대에서 평소 소매치기를 잡는 형사들이다. 이들은 지난 세네갈전에 이어 이날도 20여 명의 똥빵을 잡아냈다. 경찰은 월드컵 본선 경기가 시작되면 성추행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응원전 성추행범은 중년 남성이 많다. 대기업 간부나 교수 등 50대 고소득 전문직도 적지 않다.

이들은 젊은 미혼 여성보다 중년 여성을 노린다. 미혼 여성은 예민해서 들킬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중생이나 여고생만 노리는 경우도 있다. 피해자가 놀란 나머지 반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린 자녀와 함께 온 주부나 여자들만의 일행도 쉽게 표적이 된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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