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올림픽]황영조, 이봉주에게 보내는 편지

  • 입력 2004년 8월 27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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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조(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와 이봉주(삼성전자)는 서른네살 동갑내기. 고 정봉수 감독 밑에서 1994년부터 3년 동안 한솥밥을 먹은 사이다. 이봉주의 동갑내기 부인 김미순씨를 소개한 사람도 황영조. 그만큼 두 사람의 인연은 깊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몬주익 언덕의 신화’를 엮어내며 우승한 황영조가 아테네에서 30일 0시 남자 마라톤 레이스를 앞둔 친구 이봉주에게 우정 어린 편지를 보냈다.>

“20년 내친구 봉주야, 죽을 각오로 뛰어라”

내 친구 봉주에게.

이제 네가 마라톤 평원을 누빌 일만 남았구나. 솔직히 친구로서 이런 얘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네가 꼭 금메달을 따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몇 자 적는다.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은 정직하다. 동등한 조건에서 인간한계를 실험하는 진정한 올림픽 정신을 담고 있으니까. 그만큼 손에 넣기도 힘들다.

이번 레이스를 놓고 ‘지옥의 코스’니 ‘무더운 날씨’니 말들이 많은데 사실 의미가 없다고 본다. 누구에게나 조건은 똑같으니까. 23일 열린 여자 마라톤에서 세계기록 보유자인 폴라 래드클리프(영국) 대신 일본의 노구치 미즈키가 우승할 줄 누가 예상했겠니.

넌 이번 레이스에서 두 가지 중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선두그룹을 따라가는 것과 아예 2위 그룹에 처져 뛰는 것. 첫째 선택은 금메달을 노릴 수는 있지만 오버페이스를 할 경우 자칫 메달은커녕 10위권 밖으로 처질 수도 있다. 그리고 너도 알겠지만 두 번째 선택은 상위권 진입은 가능하나 금메달을 딸 수는 없다는 게 문제다. 선택은 네 몫이다.

난 늘 ‘이번이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뛰었다. 훈련 때도 마찬가지였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는 ‘레이스를 마치고 바로 은퇴한다’는 생각으로 올인했다. 몬주익 언덕을 올라갈 때 숨이 턱까지 찼지만 죽을 각오를 했기에 모리시타 고이치(일본)를 이길 수 있었다.

최근 네가 “아테네 올림픽 이후에도 계속 뛸 것”이란 말을 했다는 소식에 놀랐다. 31번이나 풀코스를 완주하고도 또 뛰겠다니…. 하지만 지금은 올림픽 후의 생각을 할 때가 아닌 것 같다. 오직 올림픽에 모든 걸 걸어야 한다.

너나 나나 이제 서른넷이다. 지난달 말 강원 평창군 횡계에서 훈련에 열중인 너를 봤을 때 ‘이젠 봉주도 옛날 같지 않구나’란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으니까. 너에겐 이번이 올림픽 금메달을 딸 마지막 기회가 아닌가 싶다.

봉주야, 우리가 고등학교 시절 라이벌로 처음 만났으니 벌써 20년이 다 돼가는구나. 묵묵히 성실하게 땀 흘리는 네 모습을 보면 고개가 숙여진다.

지금까지 흘린 땀방울이 헛되지 않게 죽을 각오로 달려 한국에 멋진 금메달을 선사하기를 친구로서 진심으로 바란다.

힘내라 봉주야.

아테네에서 친구 영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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