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창]‘경기장 바캉스’

  • 입력 2004년 8월 16일 20시 31분


축구 월드컵이 열린 2002년 한국은 6월 한 달간 온통 붉은 물결로 휩싸였다. 그러나 108년 만에 올림픽이 다시 열린 아테네에는 우리의 ‘붉은악마’에 견줄 ‘그리스 악마’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한국과 그리스의 축구 개막전이 열린 지난 12일(한국시간) 아테네 올림픽 스포츠 콤플렉스 내 삼성 홍보관에는 대형 멀티비전이 설치됐지만 자원봉사자들은 일부를 제외하곤 곁눈질 한번 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응원 문화도 우리와는 사뭇 달랐다. 유로2004 우승으로 축구 인기가 절정에 올라 있지만 정작 응원 열기는 차분했다. 기껏해야 입을 모아 ‘엘라스(Hellas·그리스의 원어 이름)’를 외치는 정도. 아테네 교민 270여명 중 절반가량이 자동차로 8시간에 걸쳐 테살로니키까지 이동하고 한국에서 원정 온 붉은악마 회원 등 340여명이 힘을 합쳐 조직적인 응원전을 펼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전체 입장권 판매는 겨우 절반을 넘긴 상태. 제1회 올림픽의 주경기장이었던 유서 깊은 파나티나이코 양궁장은 16일 한국 응원단 100여명을 제외하곤 파리를 날릴 정도. 세계적 스타인 비너스 윌리엄스가 15일 첫 경기를 치렀던 테니스 경기장도 500여명만이 입장하는 민망한 장면이 연출됐다.

그리스인들의 관전 태도도 눈길을 끈다. 실외경기장인 양궁과 수영장, 도로 사이클 경기가 열린 그리스 시내 등은 섭씨 40도에 이르렀지만 이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외국에서 온 기자들만 그늘을 찾아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게 눈에 띌 뿐 현지인들은 웃옷을 벗어 제친 채 강렬한 태양광선을 오히려 즐기는 표정이었다.

자국 선수의 성적에 일희일비하기 보다는 경기 자체를 즐기는 이들을 보면서 국내에선 느낄 수 없었던 여유로움을 엿볼 수 있었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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