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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5월 26일 15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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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갈매기의 생태는 아예 무시한 채 텃세로서 1년 내내 상주하는가 하면 4월이면 오히려 제 철을 만난 듯 더욱 기승을 부리는 갈매기가 있다.
집 떠난 지 3년 만에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실현한 '부산 갈매기'가 바로 그들이다.
요즘 사직야구장은 이들 부산 갈매기의 성화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매 경기 매표소 앞 행렬은 뱀 꼬리를 물고 파도타기와 신문지, 라이터 응원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들이 그토록 목매어 사랑하는 프로야구 연고팀 롯데 자이언츠는 올해 역시 25일 현재 꼴찌에 머물고 있는 상태. 지난해 사상 최초의 3년 연속 꼴찌의 불명예를 안았지만 국내 최고의 인기구단으로 부활한 롯데의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뉴욕 양키스가 'Best(최고)', 한신 타이거스가 '닌(忍·인내)이라면 롯데는 한(恨)
성적과 인기가 전혀 일치하지 않는 롯데에 대한 의문점을 풀기 위해 미국과 일본의 최고 인기구단인 양키스와 한신을 비교해봤다.
유학 시절 LA다저스에서 인턴사원을 했던 '미국통'인 박정근 한국야구위원회(KBO) 운영과장은 양키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Best of Best'라고 했다. 한해 연봉만도 무려 2억달러(약 2400억원)에 가까운 천문학적 거액을 지출하는 '영원한 제국' 양키스는 최고의 선수로 최고의 팀을 만드는 게 지상 목표.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미국의 프런티어 정신과 꼭 맞아 떨어지는 개념이다.
양키스가 미국의 경제 수도인 뉴욕에 프랜차이즈를 두고 백인과 엘리트층의 절대적 지지를 얻고 있는 것도 라이벌 구단인 보스턴, 뉴욕 메츠 등과 차별되는 이유다.
월드시리즈 26회 우승, 아메리칸리그 39회 우승에 빛나는 양키스는 초창기인 19세기에는 대표적인 약체였지만 1919년 보스턴 레드삭스로부터 베이브 루스를 헐값에 데려오면서 최강으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반면 보스턴은 이후 84년 동안 리그 우승 4회에 거쳤으며 그나마 4번 나간 월드시리즈에서도 하나같이 악재와 불운이 겹치며 정상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이게 그 유명한 '밤비노(루스의 애칭)'의 저주다.
이에 비해 한신은 롯데와 일맥상통한다. 98년부터 4년 연속 센트럴리그 꼴찌에 머문 한신은 만년 하위 팀. 지난해 호시노 센이치 감독 시절 리그 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1936년 창단 후 85년 재팬시리즈 우승이 유일하고 리그 우승은 4회가 고작이다.
그러나 한국인이 일본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는 고교 선생을 했던 특이한 경력으로 유명한 조희준 KBO 총무과장은 한신의 인기 비결을 롯데와는 전혀 다른 '닌(忍)'으로 설명했다.
이는 일본의 국민성과 프로리그 태생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일본은 6개 팀으로 출발했던 국내와는 달리 1934년 '교진(거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한 팀만으로 프로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년 후 한신이 생긴 것은 요미우리의 연습 파트너를 찾던 중 한신 전철회사가 고시엔구장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뿐이었다. 한신은 지금도 마찬가지만 당시에도 대기업은 아니었고 여러 전철회사 중 거의 최하위의 기업이었다.
이런 한신이 묘하게도 최고 인기 팀이 된 이유는 국내로 치면 영호남에 비유되는 간토(관동·도쿄 인근)와 간사이(관서·오사카 인근)의 지역감정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요미우리는 예상대로 최고 명문구단으로 자리 잡은 반면 한신은 만년 하위에 머물렀지만 간사이 사람들은 "언젠가 교진을 꺾을 날이 올 것"이란 희망 하나로 한신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한신이 꼴찌를 해도 롯데와는 달리 관중난동이 거의 없는 이유는 끝까지 순종하면서 참고 기다리는 일본의 국민성 때문. 지난해 팀이 18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하자 일부 한신 팬이 비로소 릴레이 투신을 하는 등 울분을 쏟아낸 것이 바로 그 반증이다.
이에 비해 롯데는 한국의 국민성과 상통하는 '한'의 팀이다. 서울에 이은 제2의 대도시인 부산을 연고로 하는 롯데 팬은 한신처럼 서울특별시민에 대한 열등감이나 피해의식은 별로 없다.
다만 타 지역에 비해 비교적 우수한 고교 자원을 바탕으로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를 배출했음에도 지역 라이벌인 기아의 전신 해태나 삼성, 그리고 서울 팀에 비해 성적이 신통찮았다는 게 공통점.
이와 함께 부산은 국내에서 가장 먼저 야구에 눈을 뜬 도시다. 이상구 롯데 단장은 "일본과 가까운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오래 전부터 일본 야구를 접할 수 있었던 게 부산 팬의 야구사랑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부산은 프로축구 아이콘스와 프로농구 KTF를 보유하고 있지만 유독 야구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투고타저'의 팀인 롯데의 경기는 언제 봐도 감질나게 한다. 지난 3년간을 제외하면 대승과 대패는 드물었다. 롯데는 강병철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84년과 92년 2회 우승했지만 모두 팀 승률 4위로 어렵사리 올라와서 짜릿한 역전 드라마를 일궈냈다. 강 전 감독이 아직도 부산 팬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지난 겨울에도 감독 후보 1순위로 거론됐던 이유다. 40대 초반의 양상문 감독 체제로 팀을 재정비한 롯데는 올해도 1점차 승부와 역전 승부가 다른 팀에 비해 유난히 많다.
여기에 사나이 일편단심을 최고의 미덕으로 꼽는 부산 갈매기의 '한'이 접목됐다. 때문에 롯데의 응원은 다른 구단에 비해 다소 거칠게 느껴지기 한다. 하지만 이게 바로 큰 점수차로 지고 있더라도 안타 1개만 나오면 모두가 일어나 박수를 보내는 선진 응원문화가 자리 잡게 된 이유로도 작용했다.
물론 올해 롯데가 60억 원 이상을 들여 정수근 이상목 등 거물 자유계약선수(FA)를 데려오는 등 아낌없는 투자를 한 것도 인기 만회의 주요 원인이 됐다. 김동진 운영팀장은 "투자 규모를 떠나 구단이 팬들의 고마움을 새삼 느끼고 이에 대한 보답으로 롯데의 투자 의지와 회생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가장 큰 결실이었다"고 말했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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