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찬 눈보라 속에서도…희망이 힘입니다"

  • 입력 2003년 12월 31일 16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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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속 30m의 강풍과 사방이 보이지 않는 화이트 아웃을 뚫고 전진하는 남극점 원정대원들. 지난해 11월 30일 베이스 캠프 허큘리스를 출발한 원정대는 연말까지 전체 원정 거리의 60% 이상을 소화했다. 남극점 도달 목표일은 1월 25일. -남극대륙=남극점원정대
초속 30m의 강풍과 사방이 보이지 않는 화이트 아웃을 뚫고 전진하는 남극점 원정대원들. 지난해 11월 30일 베이스 캠프 허큘리스를 출발한 원정대는 연말까지 전체 원정 거리의 60% 이상을 소화했다. 남극점 도달 목표일은 1월 25일. -남극대륙=남극점원정대
“새해다, 새해, 해피 뉴이어∼.”

갑신년 첫날 오전 5시. 박영석 대장(41)이 남극대륙이 떠나갈 듯 냅다 고함을 지른다. 순간 텐트 안이 부산해지더니 막내 이현조 대원(32)이 벌떡 일어난다. 이어 다른 대원들도 차례로 일어나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우렁차게 합창을 한다.

동아일보사가 후원하는 남극점 원정대가 남극점을 약 393km 앞두고 새해를 맞았다.

지난해 11월 30일 출발이후 33일째. 남위 86도30분, 서경 81도30분 까지 진행, 전체 원정 일정(직선거리 1134.7km)의 절반을 훨씬 넘어섰다.

새해 아침 대원들에겐 떡국 대신 ‘라면 특식’이 나왔다. 그동안 아끼고 아껴 두었던 라면 10봉지에 말린 닭고기를 넣어 끓인 별식. 평소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식량담당 오희준 대원(34)은 오랜만에 요리다운 요리(?)를 하는 게 신이 나는지 연방 싱글벙글. 오 대원은 “새해 첫날 라면 먹고 좋아하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을 것”이라며 그릇 바닥까지 깨끗하게 비웠다.

‘동아와 함께 남극점으로….’ 동아일보사기를 들고 5명의 대원이 모두 함께 ‘찰칵’. 눈기둥을 만들어 그 위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찍었다. 왼쪽부터 박영석 대장, 오희준, 이치상, 이현조, 강철원 대원. -남극대륙=남극점원정대

오전 7시. 다른 날 같으면 텐트를 걷고 운행에 나서야 할 시간. 그러나 대원들은 어깨를 맞대고 비좁은 텐트 안에 앉아 눈을 반짝거린다. 박 대장이 대원들에게 새해 뜻 깊은 선물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위성전화로 국내에 있는 가족 친지들과 통화하는 것. 원정길에 오른 이후 결혼한 박 대장과 이치상 대원(39)은 매주 한 차례 가족과 통화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지만 나머지 3명의 총각대원들은 전화기를 만질 기회조차 없었다.

나이순에 따라 먼저 박 대장과 이치상 대원이 통화를 마친 뒤 전화기를 받아든 강철원 대원(36). 서울에 있는 누나에게 “누나, 너무 춥네”라며 어리광을 부렸다.

오희준 대원은 제주 서귀포 집으로 전화해 감귤 수확은 어떻게 됐는지 물었다. 이현조 대원은 전남 영광에 계신 부친에게 간단하게 안부를 전했다.

각자 130kg이 넘는 썰매를 끌고 출발하기 전 대원들은 돌아가며 올 한 해 자신의 소원을 말했다.

먼저 박 대장이 끙끙거리더니 “올해 내 소망은 원정 내내 계속된 설사가 멈추는 것”이라고 해 대원들을 웃겼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그의 올해 소망은 대원들과 함께 남극점 원정에 성공하고 무사히 귀국하는 것. 두 번째 소망은 북극점 도전이다.

이치상 대원은 지난 연말 첫돌을 맞은 둘째아들 우영이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 3명의 총각대원들은 평생 반려자를 만나는 걸 올해 소원으로 꼽았다. 박 대장이 다시 우렁찬 목소리로 외친다. “가자 남극점으로!” 대원들도 일제히 소리친다. “가자 남극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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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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