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기록영화 찍느라 다음날 10㎞ 또 뛰었어”

  • 입력 2002년 11월 17일 17시 47분


17일 오전 손기정옹의 영결식을 마친 뒤 서울 올림픽회관 앞에서 올린 노제. 정구현(고려한국무용단)씨가 살풀이 춤으로 손옹의 넋을 달래고 있다.변영욱기자
17일 오전 손기정옹의 영결식을 마친 뒤 서울 올림픽회관 앞에서 올린 노제. 정구현(고려한국무용단)씨가 살풀이 춤으로 손옹의 넋을 달래고 있다.변영욱기자
17일 삼성서울병원에서 열린 손기정옹의 영결식장에선 손옹이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우승할 때의 기록 영화 ‘민족의 제전’이 고인의 영정 옆 TV화면을 통해 방영됐다.

이 영화는 당시 ‘영상의 천재’로 불리던 레니 리펜슈탈이 만든 것. 리펜슈탈은 이 영화를 통해 스포츠경기를 기록만이 아니라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생전의 손옹은 “그 기록 영화중 후반부는 우승한 다음날 다시 연출해 찍은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골인장면은 사실이지만 달리다가 땀을 닦는 장면 등은 리펜슈탈의 요청해 의해 다시 찍었다는 것.

손옹은 “영화를 보면 35㎞에서 40㎞ 구간을 달리는 모습에 연출한 장면이 많이 들어가 있다. 내가 달리는 모습보다는 다리를 클로즈업하거나 그림자를 찍은 것 등이 그렇다”고 말했었다.

손옹은 “다시 찍는 동안 10㎞나 달려야 해 무척 힘들었다”고 회고했었다.

가뜩이나 피곤한 마당에 리펜슈탈이 얼마나 까다롭게 굴던지 짜증까지 솟구쳤다는 것. 특히 땀 닦는 장면이 실감나지 않는다고 예닐곱 번이나 다시 시키는 바람에 화가 나 유니폼을 뒤집어 입고 뛰기도 했다는 것.

손옹은 “마라톤에서 우승한 지 20년이 지난 1956년 독일 뮌헨에서 리펜슈탈을 다시 만나 당시 이야기를 했더니‘ 미안하다’며 웃더라”고 회고했었다.

김화성기자 mars@donga.com

▼“손기정추모 통일마라톤 추진”

별세한 마라톤 영웅 손기정옹을 기리는 ‘손기정추모 남북통일마라톤대회’가 추진되고 있다.

이연택 대한체육회장은 17일 “지난달 부산아시아경기대회에서 남북이 기본적으로 의견접근을 본 경평마라톤을 북한과 협의해 ‘손기정 추모 통일마라톤대회’로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광진 대한육상연맹 부회장은 “남북이 합의만 한다면 판문점∼개성, 또는 서울∼평양을 잇는 코스에서 남의 황영조 이봉주, 북의 정성옥 함봉실 등 남녀 스타들이 참가해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역전 마라톤대회를 개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서울∼신의주를 잇는 경의선이 연결될 예정인데다 손옹의 고향이 신의주이므로 서울∼신의주간 국제 역전마라톤을 여는 방안도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문화관광부의 한 관계자는 “우선 남북 스포츠협약을 체결한 뒤 대회 명칭, 참가자 수, 코스 측정 등 실무적인 협의를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화성기자 mars@donga.com

▼묘지안장 이모저모…양정고 학생들 “선배는 우리의 큰 자랑”

○…손기정옹의 안장식이 17일 오후 3시 대전국립묘지에서 유족과 체육계 인사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안장식은 예총 6발, 예포 1발과 진혼나팔이 울리는 가운데 하관을 한 뒤 이연택 KOC위원장과 이대원 대한육상경기연맹회장이 흙을 뿌리는(허토) 순서로 진행됐으며 뒤이어 고인의 뜻에 따라 천주교식 미사가 이어졌다. 민간인이 국가유공자묘역에 묻힌 것은 손옹이 10번째이며 체육인으로는 처음이다.

○…손옹의 모교인 양정고 학생 40여명도 안장식에 참석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양정고 입학 후 수시로 손 옹을 찾아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학생회장 최승윤(3학년)군은 “암울하던 일제 치하에서 민족혼을 불러 일으킨 선배님은 영원히 우리의 큰 자랑”이라고 말했다.

○…대전국립묘지로 향하던 운구행렬에 일반 승용차가 끼어들어 추돌사고가 발생. 이날 오후 1시경 경부고속도로 대전 10㎞ 못 미친 지점에서 아반떼 승용차가 운구행렬에 끼어들다 이연택장위원장 등이 타고 있던 운구차량 측면을 들이 받은 것. 이 사고로 이위원장은 목과 무릎을 다쳤고 이윤재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은 오른쪽 정강이에 멍이 들었다. 그러나 이위원장과 이총장은 그대로 장지로 향해 안장식을 마쳤다.

대전〓지명훈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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