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못가는 선수協]"흩어지면 죽는다" 모진 각오

  • 입력 2000년 2월 3일 17시 55분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북녘땅을 고향으로 둔 실향민들의 얘기가 아니다. 자신들의 권익을 찾기 위해 한국야구위원회(KBO)와 각 구단을 상대로 2주째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프로야구선수협의회(이하 선수협) 가입 선수들의 신세타령이다.

선수협 집행부와 가입 선수들은 이번 설날 연휴기간에도 부득이한 개인사정으로 고향에 가는 쌍방울선수 8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서울에 남아 자체 훈련을 계속한다.

집행부는 지방에 집이 있는 선수들을 내려보낼 것이냐, 말 것이냐를 놓고 회의를 벌인 끝에 그냥 잔류하는 게 힘을 모으기에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다. 고향으로 돌아가면 구단관계자와 가족의 회유로 마음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현재 서울에 있는 가입선수는 모두 40명(선수협 발표). 이 가운데 두산 LG 등 서울을 연고로 하는 구단의 선수들은 아침에 잠깐 집에 들러 차례라도 지낼 수 있지만 호텔과 여관을 전전하고 있는 롯데 쌍방울 한화 해태 등 10여명의 선수는 그렇지 못하다.

고향이 대구인 해태 양준혁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생각에 선수협을 인정할 때까지 선수들이 계속 서울에서 훈련과 지지서명운동을 하기로 했다. 부모님과 친척분들도 이해를 해주실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선수들뿐만 아니라 50여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들도 연휴기간 동안 번갈아 가며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선수협 사무실에 나와 계속 도움을 주기로 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차례음식을 고향에 가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제공할 예정.

명절도 잊고 ‘끝이 안 보이는’ 투쟁을 하고 있는 선수협 가입선수들. 그들을 하나로 묶고 있는 것은 바로 신념과 책임감인 듯하다.

<김상수기자>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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