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렬 은퇴]소문없이 1년치연봉 성금 낸 '거인'

  • 입력 1999년 11월 22일 23시 58분


‘멍게’ 선동렬. 그는 최고의 선수이기 이전에 최고의 동료이자 선후배였다는 게 그를 주위에서 지켜본 야구인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야구계에 전설처럼 전해오는 일화.

고려대 81학번 동기인 정삼흠(LG코치)과 선동렬은 절친한 친구사이. 나이는 정삼흠이 두살 위지만 죽이 잘 맞아 학교때부터 항상 붙어다녔다.

프로에 와서도 가끔 만나면 서로 대접을 극진하게 해서 돌려보내곤 했다. 물론 이 대접이라는 게 거나한 ‘술대접’이 대부분.

정삼흠이 해태와의 경기를 위해 광주에 내려갔을 때다. 둘은 다음날 선발투수라는 사실도 잊고 밤새 ‘부어라, 마셔라’ 하는 통에 술병이 동났다. 3차까지 가고나니 어느새 어스름 새벽.

하필이면 이날은 낮경기여서 눈도 제대로 못붙인 채 광주구장에서 마주친 두사람. 입에선 술냄새가 진동하고 눈은 벌게져 있었다.

하지만 정작 경기가 시작되자 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불꽃을 튀겼다. 결과는 선동렬의 1―0 완봉승. 정삼흠은 “인간이 아니다”며 혀를 내둘렀다.

선동렬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고스톱과 포커. 비록 심심풀이로 하는 것이었지만 ‘선동렬의 지갑을 본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그는 대단한 실력파였다.

비상한 머리도 머리지만 사람들은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의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선동렬은 그 씀씀이에 있어선 운동선수를 능가하는 배포가 있었다.

가까운 예로 그는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하고 난 뒤 첫 고국방문때 김수환추기경을 남몰래 찾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1억원을 쾌척했다. 1억원은 불과 1년전 자신이 해태에서 받았던 국내프로야구 최고연봉에 육박하는 거금.

일화도 수없이 많고 실력도 대한민국에서 첫손가락인 선동렬.

그가 22일 은퇴를 발표했다. 팬들에겐 많은 아쉬움이 남겠지만 “정상에 있을 때 유니폼을 벗겠다”는 평소 소신을 실천한 진정한 영웅인 셈이다.

〈김상수기자〉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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