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벨기에戰 분석]「고추장 축구」가능성 보였다

  • 입력 1998년 6월 26일 19시 11분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그 머리로 볼을 막고….

다리를 절면서도 상대의 발앞에 몸을 내던지고….

한국축구의 투혼은 살아 움직였다. 엎어지고 자빠지는 처절한 사투끝에 되찾은 자존심은 값진 것이었다.

온 국민은 그토록 염원했던 ‘1승’은 끝내 올리지 못했지만 악착같은 승부근성을 보여준 태극전사의 투지어린 플레이에 온 국민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진작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을….”

한국과 벨기에의 98프랑스월드컵 E조 3차전.

객관적 전력평가에서의 열세를 무릅쓰고 한국은 벨기에와 치열한 접전을 펼친 끝에 무승부를 이끌어냈다. 막다른 길에서 강한 힘을 발산한 한국축구의 근성을 보여준 한판이었다.

이날 선제골을 내줘 전패의 위기로 치닫던 한국축구를 구한 것은 바로 선수들의 무서운 투지와 강인한 정신력. 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한국축구의 최대무기였다.

브라질축구가 부드러운 ‘삼바’리듬에, 아르헨티나축구가 경쾌한 ‘탱고’리듬에 비유된다면 이탈리아축구는 개개인의 개성을 한데 모아 발휘하는 ‘오페라’에,독일축구는 일사분란한 ‘행진곡’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한국축구의 특징은 무얼까. 흥이 나야 어깨를 들썩이는 ‘신바람 축구’다.

신이 나고 뜻이 모아지면 한마음으로 더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신바람 근성과 맥이 통하는 것.

이번 세차례 예선경기에서 이같은 속성은 그대로 드러났다.

하석주의 퇴장으로 위축돼 공격카드를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수비강화에 치중했던 멕시코전, 상대의 위세에 지레 겁을 먹고 무승부를 목표로 소극적으로 임하다 골세례에 속수무책이었던 네덜란드전.

결국 멕시코, 네덜란드와의 1,2차전에서 한국축구는 ‘덜된 개인기와 모자라는 체력’으로만 점잖게 대응한 것이 패인이었다.

물론 기술과 전략이 앞서야지 투지 하나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다지만 전통적인 팀의 색깔을 살리는 것도 중요한 것임을 벨기에와의 3차전에서 한국은 보여줬다. 신바람나게 하는 팀 분위기가 보다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값진 교훈을 준 승부였다.

〈이재권기자〉kwon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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