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의 야구읽기]1,000승은 고뇌의 값진 선물

  • 입력 1998년 6월 9일 19시 22분


흔히 프로야구 감독은 남자로 태어나 한번 해볼 만한 가장 매력적인 직업중 하나로 꼽힌다.

과연 그럴까. 적어도 국내 프로야구 감독은 그렇지 않다.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치열한 경쟁. 팀의 실제 전력과는 관계없이 무조건 좋은 성적을 거두기를 바라는 구단과 팬들의 성화. 오죽했으면 ‘감독목숨은 파리목숨’이란 말까지 나왔을까.어느 감독이든 3연패만 당해보라. 야간 이동버스 안에서 보는 밤하늘의 아름다운 별들은 그 빛을 잃고 만다.

내가 지금 뭘하고 있나. 우리 팀은 왜 이럴까. 그때 왜 그런 작전을 했을까. 투수교체를 좀더 일찍 했었더라면…. 온갖 상념이 교차한다.

이런 가운데 지난주 해태 김응룡감독이 거둔 1천승은 참으로 큰 의미가 있다.

김감독은 선수들을 긴장시키기 위해 때로는 위압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그가 지난 15년동안 망가뜨린 시계만도 10여개, 부러뜨린 방망이도 15개는 족히 될 것이다.

그는 1천승을 거둔 뒤 인터뷰에서 “올해도 우승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평소 김감독의 스타일을 잘 아는 필자는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올해 사상 최약의 전력인 해태.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기 위한 고도의 전략적인 발언이었던 것이다.

그는 언제나 그랬다. 팀이 약하다 싶으면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반대로 상대가 약하다 싶으면 엄살을 부리면서 선수단의 긴장을 이어갔다.

몇몇구단에선 훨씬 좋은 조건을 제시했지만 추호의 흔들림없이 한 팀에 남아 아홉번이나 챔피언에 오른 김응룡감독. 그야말로 우리 시대의 몇 안되는 진정한 영웅일 것이다.

허구연〈야구해설가〉kseven@nuri.net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