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일 저런일]박찬숙,외압으로 신탁은행 포기…태평양行

  • 입력 1998년 3월 9일 19시 50분


21년 전인 77년 11월 서울 명동 신탁은행 본점 강당. 여고농구 랭킹1위 박찬숙(당시 숭의여고3년)을 뽑는 자리였다.

선발방법은 선수가 원하는 실업팀 2개와 금융팀 1개를 미리 써낸 뒤 각팀이 추첨으로 선발순위를 정하는 것. 박찬숙은 신탁은행 태평양화학 코오롱을 써냈다.

1순위를 뽑은 신탁은행 관계자가 부산하게 구단고위층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당시 정계의 거물이었던 이모씨가 금융팀에 돌아가며 전화를 걸어 박찬숙을 뽑지 말라고 압력을 넣었던 것.

남은 팀은 코오롱과 태평양화학. 남은 번호는 2번과 11번. 당시 코오롱 코치였던 진가일씨(한국농구연맹 경기운영위원)가 한장을 뽑았는데 11번. 이바람에 손 안대고 ‘거물선수’를 뽑은 태평양은 전성시대를 열었고 진씨는 두고두고 ‘조막손’으로 불리며 가슴을 쳤다.

또 다른 얘기. 남자농구 현대와 삼성의 스카우트 싸움이 불뿜던 82년 가을. 고려대 4년생 이민현은 당시 랭킹1위. 현대와 삼성은 연방 “한장 더”를 외쳐댔다.

그러던 어느날 현대와 삼성이 돌연 이민현 포기를 선언했다. 스카우트 질서를 바로잡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담합’을 결행한 것.

오갈데 없어진 이민현은 산업은행을 택했다. 희희낙락한 산업은행 팀관계자가 고위층에 전화를 걸었는데, 대답은 “노(no).” 기존선수가 이미 정원을 넘어섰다는 것이 이유.

이바람에 이민현은 기업은행으로 진로를 바꿨고 산업은행은 ‘줘도 못먹는 팀’으로 스타일을 구겼다.

〈최화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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